매일신문

[고속버스 안전 빨간불] 저숙련·고령화 심화…기사 부족으로 안전‧이동권 위협

지원없는 현 상황 지속되면 앞으로 5년 안에 고속버스 기사 사라질 우려
철도가 닿지않는 교통 사각지대, 고속버스 역할 분명
연간 2천만 승객들 교통 수단 선택권, 이동권 보장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옆 고속버스 기사 쉼터 내부 모습. 노선별 운행시간이 달라 버스 기사들이 수시로 다니면서 숙면을 취하기엔 어려움이 있어보였다. 김우정 기자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옆 고속버스 기사 쉼터 내부 모습. 노선별 운행시간이 달라 버스 기사들이 수시로 다니면서 숙면을 취하기엔 어려움이 있어보였다. 김우정 기자
9일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버스터미널에서 한 운전 기사가 운행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고속버스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몇 해 사이 교통사고가 늘어나면서 인력난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장시간 운전에 따른 피로도 상승과 경력 부족으로 인한 운전 미숙 등이 승객 불안을 높인다. 전국을 잇는 '모세혈관'과 같은 노선도 점차 줄면서 국민들의 이동권 제약도 현실화하고 있다.

◆"5년 안에 고속버스 기사 씨가 마른다!"

지난달 21일 오후 1시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식당가로 향하는 길목 한쪽 게시판에 고속버스 승무원 모집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학자금 전액 지원, 임직원 종합검진, 주택자금 대출 등 혜택도 내세웠다. 하지만 해당 고속버스 업체로 지난 두 달간 지원한 인원을 고작 3명뿐이었다. 그마저도 일부는 요건 미달로 채용을 할 수 없었다.

터미널 외부로 나가 한쪽의 3층 높이 건물로 향했다. 이곳은 고속버스 기사들의 숙소였다. 고속버스 업체마다 방 2~3개씩을 숙소로 꾸몄다. 방에는 군대 훈련소 내무반 느낌의 침상이 놓여있었다.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 하나가 딸려있었다.

침상에는 기사들 제복이 걸려있었다. 해가 들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기사 한 명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기사마다 드나드는 시간이 달라 잠을 깊이 들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코골이가 심한 기사들을 위해 아예 코골이 전용 방도 마련돼있었다. 그나마 이곳 상황이 나은 편이다. 지방에는 임대한 모텔에서 자는 등 숙소 환경이 더 열악한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로 고속버스 업계의 인력난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인력 부족에 따른 버스 감차, 노선 폐지 등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업계에선 향후 5~6년 이내 고속버스 기사가 상당수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감도 퍼지고 있다.

특히 준공영제 시행으로 노선 운영 적자분을 지자체가 보전해주는 시내버스와는 달리 시외‧고속버스 업계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대도시 준공영제 지역의 기사 임금이 대폭 인상되자,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준공영제 시내버스로 기사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고속버스 운전기사 2022년 2천352명에서 올해(4월 기준) 2천88명으로 줄었다. 현재 필요한 기사 정원 2천253명에 165명(7.3%)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3년간 퇴직한 기사는 811명인데 비해 입사자는 385명으로 절반도 되지 않는다. 특히 그만둔 기사 가운데 대다수인 74.2%는 중도 퇴사자다. 나머지 25.8%는 정년을 마친 기사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고속버스 기사 중 50~60대 비중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이 정년을 마칠 때쯤이면 인력난이 더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4월 기준) 전체 2천88명의 기사 중 50대가 1천304명으로 62.5%, 60대가 125명으로 6%를 차지했다.

한 시외‧고속버스 업체 대표는 "근로 조건을 개선하려 해도 준공영제가 시행되는 시내버스와 달리 운송 수입만으로 운영하는 시외‧고속버스는 임금인상이 어렵다. 시외‧고속버스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적자 폭이 커지기 시작했다. 수입이 없으니 기사들 복지와 처우 개선이 힘들다. 손실보전·준공영제의 시내버스와 달리 시외‧고속버스는 지원이 사실상 없다. 회사에 대한 지원이 어렵다면 인력 확보를 위해 기사 개개인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강도 업무‧저숙련 기사…사고 우려↑

고속버스 운전기사 인력난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기존 기사들은 점차 고령화하는 가운데 업무가 과중 되고, 그나마 채용한 기사들도 운전경력이 부족한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고속버스 업체들은 운전기사 지원자가 적다 보니 경력 조건 등을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거 10여 년 전 고속버스 기사가 선호되던 직업일 때는 경쟁률이 높아 대형차량과 버스 운전경력 3년 이상, 사고 이력 검토 등 문턱이 높았다. 현재는 정년을 넘긴 기사를 재고용하거나, 대형면허나 버스운송 자격증만 있어도 경력과 상관없이 지원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대중교통 현황조사에 따르면 2019년을 기점으로 21~30세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1년 미만의 저경력 기사 비율도 2021년 0.18%에서 지난해 2.91%로 늘었다. 아울러 안정적인 근무 형태인 '2일 근무 1일 휴무' 비율은 2019년 65.6%에서 지난해 32.6%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기타(탄력 근무 등)가 34.4%에서 56.7%로 상승하는 등 그만큼 업무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현장에선 인력 부족으로 남은 인원들의 근무 강도가 높아지면서 장시간 운전에 따른 졸음과 집중도 저하 등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경력이 부족한 기사들의 운전 미숙도 사고 발생 위험을 높인다. 실제로 지난달 수원에서 원주로 향하는 버스 기사가 계속 졸면서 운전하는 모습이 승객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고속버스 업계 관계자는 "고속버스 운전은 빠른 속력에 따라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고속도로의 각종 돌발 상황(다른 차량의 추돌 등)에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한 만큼 경력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기사가 부족하니 예전처럼 운전경력과 사고 전력을 깐깐하게 볼 수가 없다. 그만큼 사고 발생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다"고 설명했다.

9일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버스터미널에서 한 운전 기사가 운행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연간 2천만 명 수송, 국민 이동권 축소

노선이 정해진 고속버스는 기사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필수다. 하지만 운전할 기사가 없다 보니 버스 감차와 노선 감소로 이어지고 승객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불편과 피해로 이어진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연간 2천만 명의 승객들은 대중교통 선택권과 이동권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1990~2000년대 2천200여 대였던 고속버스는 올해는 1천250대(감차 계획 반영)까지 줄었다. 승객도 2000년대 초 4천만 명대에서 지난해 1천917만 명에 그쳤다. 특히 고속버스 8개 업체를 살펴보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 이후 3년간 노선 수가 260개에서 191개 노선으로 대폭 감소했다. 폐지된 노선 중 대구경북권은 동대구~충주, 부산~구미, 고양~동대구, 대전~경주, 동서울~구미, 동대구~영주, 동대구~제천, 서울~김천, 대전~포항, 동서울~대구 등이 있다.

고속버스는 중간 정차지 없이 목적지까지 바로 가는 만큼 시간도 더 단축할 수 있다. 목적지에 따라 열차가 담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고속버스가 맡고 있어 승객들은 필요에 따라 교통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 결국 고속버스 노선이 줄어드는 만큼 승객들의 이동권과 교통 선택권이 사라지는 셈이다.

김용성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은 "고속버스는 철도 대체 대중 교통수단으로 역할이 중요하다. 철도가 없는 곳들은 고속버스가 없어지면 지역 간 이동이 위축된다. 지역민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속버스도 대중교통으로서 공공성을 지닌 만큼 다른 교통 수단과의 형평성에 맞춰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회사 지원이 어렵다면 기사 개개인에 대한 지원이라도 이뤄져야 시민 안전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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