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9일 자 매일신문에 '의성에 100만 평 규모의 공항신도시 들어선다'는 기사가 실렸다. 경상북도는 신공항과 연계해 의성군을 중심으로 항공 산업단지 및 물류단지는 물론 농식품 산업 클러스터, 관광문화단지 등 주거 및 산업, 관광, 교육이 조화된 100만 평 규모의 대구경북신공항 배후 신도시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 세부 내용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나 이 '계획'만 보면 의성군은 산업에서부터 주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가장 멋지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된다.
어려서 엉터리 교육을 받은 탓에 '도시'하면 인구집중, 실업, 빈곤, 주택난, 교통난, 공해, 범죄, 소외 등 온갖 나쁜 '문제'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도시에 대한 무지를 깨우치게 되면서 왜 학자들이 인류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주저 없이 도시를 꼽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 문명은 도시에서 태어난 것이다.
연구년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이라는 곳에서 보낸 적이 있다. 중년층에게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주연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 1993)로 잘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시애틀은 전형적인 항구도시로 워싱턴 주에서 가장 큰 도시다. 하지만 시애틀 자체의 인구는 약 75만 명 정도로, 대구는 물론이고 50만 명의 포항과 비교해도 인구 규모 만으로는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시애틀은 세계 유수의 글로벌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보잉, 코스트코, 스타벅스 등이 본사를 두고 있어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도시다. 역시 지역과 도시의 성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민간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밖에 없다는 진실(truth)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한편 워싱턴 주 바로 아래 오리건 주에 포틀랜드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 역시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포틀랜드는 시애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시애틀 곳곳이 첨단 기술이 접목된 세련된 도시의 이미지라면, 포틀랜드는 교통체계를 비롯한 도시의 인프라, 도시 건물 등이 다소 낙후돼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다.
대표 기업도 근교에 있는 나이키 본사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포틀랜드 역시 시애틀만큼이나 미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시애틀이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도시라면, 포틀랜드는 예술과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창조적이고 힙(hip)한 도시로 명성을 날린다.
정치행정의 관점에서 이 두 도시의 공통점은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시민이 살고 싶은 도시를 직접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거버넌스란 도시계획을 비롯한 공공재와 서비스 및 생활시설 공급이라는 정책 결정에 주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도시를 누군가(예컨대, 정부가) 계획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 도시가 진화해 온 결과라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도시가 각자 다른 과정을 거쳐 다른 모습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애틀과 포틀랜드가 확연히 다른 모습이지만, 둘 모두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번 공항 신도시 계획 역시 어디선가 많이 봤던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산업단지 및 물류단지 조성, 클러스터 구축, 교육도시 등 도시계획의 단골 메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공무원들은 의성군에 어떤 비전을 가지고 이번 공항신도시를 구상했을까? 신도시를 계획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살기 좋은 도시란 무엇일까? 왜 정부의 장밋빛 계획을 들을 때마다 이청준 선생의 '당신들의 천국'이 떠오르는지….
정부의 도시계획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한다. 도시계획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고유의 역사와 매력을 무시한 채 모든 도시에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계획을 경계하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계획이 처음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계획된 도시는 처음 계획한 대로 영속되지 않는다. 도시 성장의 지속성은 오직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에 의한 자생적 진화가 뒷받침될 때 성립한다. 시애틀과 포틀랜드, 그리고 유럽의 살기 좋은 도시들은 정부의 완벽한 계획의 산물이 아니다.
계획은 얼마든지 거창하고 근사하게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은 언제나 지난(至難)한 과정이고 결과는 결코 의도한 대로만 되지 않는다. 도시에서 살아가고 도시를 가꾸어갈 시민이 배제된 도시계획은 자칫 값비싼 대가만 치른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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