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풍요롭지 않았다. 구름에 가린 보름달은 애잔했다. 추석 연휴 폭염이 이어졌다.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날씨는 미쳤고, 물가는 뛰었고, 민심은 화났다.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大亂)이 우려됐다. 디행히 큰 혼란 없이 고비를 넘겼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자'는 주문(呪文)이 통한 것인지, 정부와 국민이 현명하게 대처한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응급실이 정상 운영된 것은 아니다. 연휴 첫날, 청주에서 양수가 터진 임신부가 70여 개 병원의 문을 두드린 뒤에야 입원할 수 있었다. '응급실 뺑뺑이'는 곳곳에서 벌어졌다.
시민들은 차례상과 고향의 술자리에서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내 대화 주제는 날씨에서 물가, 의료 공백, 정치권 싸움으로 이어졌다. 가마솥 날씨에 짜증 나고, 한 포기 1만원 넘는 배춧값에 놀라고, 의정(醫政) 갈등에 분통이 터진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이 모든 원망의 종착역은 정치판이었다. 국민들은 하루하루가 고통인데, 정치권은 '네 탓'이라며 싸움질만 하니.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8일 '추석 민심' 간담회에서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에 달해 심리적 정권교체가 시작된 초입 국면"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19일 본회의를 열어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상병 특검법' 등을 강행 처리할 방침이다. 또 민주당 내 전(前)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문재인 전 대통령 수사 담당 검사의 탄핵까지 고려하기로 했다. 이게 민주당의 추석 민심 독법(讀法)이다. 그들에게 민심은 강성 지지층의 주장뿐이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정쟁(政爭)에만 몰두한다면, 우리는 국민 삶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말은 그럴싸하나, 국민의힘은 힘이 없다. 한동훈 대표가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는 지지부진하다. '민생 공통 공약 협의 기구'는 진척이 없다. 정치력 부재(不在)가 빚은 결과다. 한국갤럽이 지난 10∼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율과 국민의힘 지지도는 직전 조사보다 3%포인트 떨어진 20%, 28%를 기록했다. 위기 상황이다. 여당과 대통령실, 야당은 '동굴'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추석 민심을 당신들 입맛대로 해석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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