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이승만·박정희의 절반 닮은 정치인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우리나라가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150여 개국 중 유일하게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데는 국민의 노력과 더불어 걸출한 지도자의 공이 크다. 특히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1910년 35세의 망명객 신분으로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국제법 전공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1875~1965)은 신생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운 주역이다.

박정희(1917~1979)는 1960년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를 밑돌던 세계 최빈곤국 한국을 가난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고 부국강병을 이뤄냈다. 네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1964년 1억달러이던 수출액은 1977년 100억달러, 1979년 150억달러로 늘었다. 그의 '하면 된다' 정신은 우리나라가 지난해 수출 세계 8위, 국방력 세계 6위에 오른 원동력이 됐다.

세상을 뜬 지 올해로 각각 59년, 45년째인 두 사람을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도 그리워하며 흠모하는 것은 밖으로 드러난 업적 때문만이 아니다. 공인(公人) 의식과 국가관에 관한 한 누구보다 투철하고 엄격해 불멸(不滅)의 귀감이 되고 있어서다.

미국제 밀가루를 한 포라도 더 원조받으려 애썼던 이승만은 명절 떡값은 언감생심이고 틈만 나면 비서실 예산을 국고에 반납시켰다고 한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경복궁 내 경회루에서 토요일 낚시를 하며 시름을 잠시 잊는 것이었다. 미국 하와이에서 말년을 보낼 때 한국으로 돌아갈 여비 걱정을 늘 했을 정도로 이승만은 평생 가난하고 검소했다.

박정희의 청렴도 그에 못지않았다. 10·26사태 다음 날 새벽 서울 국군통합병원에서 박정희 시신을 확인한 군의관의 "짜깁기투성이인 바지와 낡고 해진 허리띠,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핀, 평범한 세이코 시계 등 대통령 옷차림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는 증언이 이를 웅변한다.

재임 시절 박 대통령은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멸치나 고기 국물에 만 기계국수로 점심을 했다. 김정렴 비서실장은 회고록에서 "장관들도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는 날이면 으레 점심은 국수였다"고 밝혔다. 서슬 퍼런 권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가족 또는 친인척 관련 비리에 연루는커녕 구설에도 오르지 않았다.

이들은 비리 혐의로 자식이 투옥되거나 본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몇몇 문민 대통령들이나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챙겼던 군 출신 후배 대통령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았다. 이승만·박정희에게는 '왜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과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 의식이 명확했다.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특수성에 철저했고 진취적인 역사관도 갖고 있었다.

이들의 비범함은 절로 생겨난 게 아니라 청년 시절부터 조국의 현실과 어려움을 직시하고 해결 방안을 처절하게 고뇌한 산물이다. 수준 높은 저서들이 두 분의 지적(知的) 투쟁을 증명한다. 1899년 1월부터 5년 7개월간 한성감옥에 투옥됐던 이승만은 1904년 2월부터 4개월 동안 집필한 '독립정신'에서 국가의 흥망성쇠 원리와 조선인의 비굴한 행태, 노예적 습성 등을 지적하며 혁파 방안을 서술했다. 1941년엔 'Japan Inside Out'을 통해 일본의 미국 침공을 예견했고 1945년에 낸 '건국과 이상(理想)'에선 신생 국가를 이끌 방략과 결의를 다졌다.

만주군관학교 예과 수석 졸업 후 일본 육사에 편입해 3등으로 졸업한 박정희는 5·16 직후인 1961년 6월 16일 '지도자도(指導者道)'를 냈다. 이후 1962년부터 1978년까지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국가와 혁명과 나' '민족의 저력' '민족중흥의 길' 등을 썼다.

그는 "지도자는 대중들의 편에서 동고동락하는 동지로서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야 한다"며 "지도자는 부단한 자기반성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박정희의 위대함은 책에 담은 민족애(民族愛)와 국가 비전은 물론 자신에 대한 사소한 다짐과 훈계까지 어김없이 실천했다는 데 있다.

1990년대 이후 대통령들이 보여온 지리멸렬한 리더십과 정치권의 품질 하락은 국민적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국가의 흥망(興亡)을 좌우하는 최고 리더십의 수준이 계속 퇴행한다면 대한민국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사심(私心) 없는 애국심으로 21세기 대한민국을 진짜 선진 국가로 다져나갈 견실한 지도자의 복(福)이 우리에겐 더 이상 없는 걸까?

2년 반 후인 2027년 3월 대통령 선거에 이승만·박정희의 절반이라도 닮은 후보를 볼 수 있길 바란다. 그렇지 못하다면 어디에선가 그런 지도자들을 키우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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