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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칼럼] ‘통일 말자’ 임종석, 자각인가 추종인가

정경훈 논설주간
정경훈 논설주간

20세기 전반기 유럽의 공산당은 소련 공산당의 지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자율성 없는 말초(末梢) 조직이었다. 이런 소련의 '지도'(指導)를 담당하는 기구가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Communist International)이다. 중앙집권적 관료 체계와 절대적 상명하복의 '철의 기율(紀律)'을 갖춘 볼셰비키의 복사판이었는데 1928년 제6차 대회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경제적 위기와 혁명적 격변'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정세 판단을 내렸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와 뒤이은 세계 대공황은 이런 판단에 확신을 부여했다.

이에 들떠 코민테른은 극좌(極左) 노선을 채택하고 각국 공산당에 비타협적 투쟁을 독려했다. 투쟁 대상에는 보수 진영은 물론 폭력혁명에서 온건한 합법 투쟁으로 방향을 바꾼 사회(민주)주의자도 빠지지 않았다. 코민테른은 이들을 '사회 파시스트'(social fascist)라고 비난하며 그들과 모든 관계를 단절하라고 각국 공산당에 지시했다. 당시 유럽 공산당 가운데 가장 전투적이었던 독일 공산당은 이를 충실히 이행, 독일 사회민주당(SPD)을 '서구의 하인'이라고 비난하고, 나치가 프로이센의 SPD 주(州)정부에 대한 불신임 국민투표를 발의하자 나치를 편들었다.

그러나 레닌이 '좌익 소아병(小兒病)'이라고 비판했던 이런 극좌 노선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집권하고 공산당이 박살 나면서 치명적인 오류로 판명 났다. 이에 따라 코민테른은 1935년 제7차 대회에서 '반파시즘 통일전선'-파시즘 척결을 목표로 하는 모든 정치 세력과 연대(連帶)해 공산당의 혁명 역량을 보전하고 기회를 보아 연대 세력을 제거하고 공산당이 단독으로 권력을 잡는다-이란 수정 전술을 채택했다. 연대 대상에는 우파도 포함됐는데 이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대의'의 배신이었지만 서구 공산당은 이에 전적으로 호응(呼應)했다. '극좌 노선'에서 '우익 기회주의'로 급선회한 것이다.

히틀러에 의해 SPD가 와해되면서 가장 중요한 유럽 공산당이 된 프랑스 공산당은 이를 잘 보여 줬다.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피에르 라발의 보수 정부에 협조해 극렬히 반대했던 군 의무 복무기간 연장과 군 예산 증강을 지원했다. 이는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스탈린은 불·독(佛·獨) 개전(開戰) 시 프랑스가 독일을 붙잡아 놓아 독일이 총부리를 소련으로 돌리는 것을 막으려는 계산에서 그런 지시를 했던 것이다. 프랑스 공산당은 철저히 소련의 이익에 봉사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씨가 딱 그 꼴이다. 그는 '9·19 공동선언' 6주년을 맞아 "통일을 하지 말자"고 했다.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헌법 제3조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했으며, "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하자"고도 했다. 임 씨는 민족해방(NL)계 운동권 출신으로 '자주적 평화통일'을 목표로 내건 전대협 3기 의장을 지냈으며, 1989년 임수경 씨 방북을 주도했다. 2019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뒤 "다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할 만큼 통일에 '집착'해왔다.(그 통일이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통일을 말자'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변심'의 이유가 무엇인지-지령(指令)을 받았는지 자각(自覺)인지-모르겠으나 북한 김정은의 '통일 포기' 노선의 추종(追從)임은 분명하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부터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통일 관련 조직을 없앤 것은 물론 북한 국가의 '통일' 표현도 지웠다. 할아버지 김일성에 이어 아버지 김정일이 내걸었던 '적화 통일'이 점점 멀어지는 현실에 대응하려는 생존 전략이자 김일성·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 입지를 굳히려는 방향 전환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그렇다면 임 씨의 통일 매진은 매진대로, 통일 포기는 포기대로 우리 민족 전체가 아닌 철저히 북한의 이익을 위한 추종인 셈이다. 남한 친북 단체들의 '통일 지우기' 뇌동(雷同)도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인민의 뇌수(腦髓)'가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괴뢰(傀儡)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을 것이다. 임 씨를 '의장'으로 '결사 옹위'했던 전대협 사람들 중 '통일'을 버리지 않은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임 씨의 '통일 포기'에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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