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적군 여러분, 별일 없나요? 라디오 도쿄의 '앤'이에요. 이제부터 제로 아우어(Zero hour) 정규 프로그램을 시작할 거예요. 호주와 남태평양에 있는 우리 친구들을 위한, 그러니까 제 말은 우리의 적을 위한 음악, 뉴스 방송 말이에요. 모두 준비되셨나요? 좋아요. 이제 여러분들 사기를 떨어뜨릴 우리의 첫 번째 펀치를 날려 드리죠.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합니다. 'Strike up the Band' 띄워 드릴게요."(1944년 2월 22일 방송)
태평양전쟁 당시 NHK '라디오 도쿄'에서 방송한 진행자의 멘트다. 대미 심리전 방송이었다. 미국식 영어 발음이 유창한 여성들이 돌아가며 진행했다. '도쿄 로즈'라고 불렸던 이들의 미션은 미군의 사기 저하였다. 방송을 들은 미군들이 본토인 집에 가고 싶도록 만들어야 했다.
6·25전쟁에서도 심리전은 중요했다. 칠곡 전쟁기념관에서 인민군에 뿌려진 전단들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가정생활을 못 하는 것도 김일성 때문이다'라는 전단에는 퇴근한 가장을 맞는 아내의 모습이 커다란 삽화로 자리 잡고 있다. 목소리나 그림은 심경의 변화에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상상(想像)이 동기 부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심리전 전략이 크게 바뀐 듯하다. 이념적 우월성을 자랑하던 대남 방송이 아니다. 사이렌, 북·장구 소리 등 소음을 확성기로 내보낸다. 군인들도 고생이지만 강화도 등 서해 지역 주민들이 고충을 겪는다고 한다. 대북 심리전 방송으로 K-팝을 틀었다면 북한의 대중가요인 '휘파람'(이것도 1990년대 노래다) 같은 노래들을 틀어 주길 바란 건 욕심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동태복수(同態復讐)로 보이는데 확성기 이용만 동류항으로 엮을 수 있을 뿐이다. 너희들이 쓰레기를 보냈으니 우리도 쓰레기를 보낸다며 인분을 넣어 보낸 것도 괴상망측했다. 문화적 풍모나 생물학적 본능에 끌려 제 발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설 수 없다. 빈약한 대응에 결핍이 전해진다.
전쟁터에서 기사도(騎士道) 같은 공정한 싸움 규칙을 기대하는 건 낭만에 가깝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이기는 게 전쟁의 속성이라지만 우리의 문화적 역량이 압도적 비대칭 전력으로 자리 잡았음을 북한군이 잘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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