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인4쌤의 리얼스쿨] 떠나는 사랑을 배우지 못한 세대

아이들 사랑할 줄 모르는 부모 많아
자녀를 사랑한다면 잘 떠나보내야

부모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부모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가장 친숙하게 접한 작가는 김현수 박사님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대안학교 교장도 하고, 강연도 많이 하는 그는 이른바 '중2병' 전문가다. 한창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겠고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이 심할 때 이분의 책을 많이 읽었다.

그가 최근에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아이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들으면서 수없이 반성했다. 그리고 나와 동년배인 우리 학생들의 부모님을 떠올린다. 요즘 중학생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1970년대 말 또는 1980년대에 태어났으니 나와 경험이 비슷할 것이다.

◆고생이 곧 사랑이었던 시대를 지나

70, 80년대에 출생한 우리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수혜를 직격으로 맞고 대중문화에 온전히 열광할 수 있었던 여유가 있던 세대다. 정의를 외치는 시위대는 잡혀가기는 해도 예전처럼 옥살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훈방됐다. 예전에는 가지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나 대상은 누구나 욕망할 수 있는 대상이 됐다. 용돈으로 CD도 사고, 저가 화장품도 사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외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20대를 지나왔다.

그렇게 되기까지 부모 세대는 공장에서 밥벌이를 하거나,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들어가며 월급을 받거나, 발품을 팔고 시간을 바쳐 장사를 했으리라. 이전 세대는 오일머니를 벌어오느라 한국 땅에 발을 딛기 힘들었으리라. 그 이전 세대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이전 세대는 남의 나라 땅에 사느라 고단한 날들을 보냈으리라.

이런 결과로 뭐든지 열심히 해서 결과를 내는 능력주의, 성과주의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큰 일조를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것이 사람을 기르고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됐는지는 의문이 든다.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면 우리 사회는 목표 하나는 잘 이룬 셈이다. 대학 진학률도 높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도 배출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성과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가 행복해졌는지, 그 사회 속에서 내가 한 인격체로서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지 물어본다면 답이 쉽게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조건이 곧 사랑인 시대가 도래하고

결국 우리 세대는 물질적인 풍요와 민주적 가치가 높아지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으나, 부모님 세대가 이룬 '고생=가족 사랑'의 공식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 같다.

'네가 지금은 고생스럽지만, 이것을 통과하면 좋은 대학이, 좋은 배우자가, 좋은 아파트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것을 통과하지 못하면 너는 우리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는 거야.'

이 속삭임이 우리 속에 있지는 않은가? 나는 그 속삭임이 부모가 된 우리에게도, 자녀에게도 틀림없이 불행한 속삭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김현수 박사님의 이야기를 꺼내보자면, '아이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부모'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아이를 조건부로 사랑한다."

네가 무엇을 이루면, 나는 '그것을 이룬 나의 아들, 딸로서'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말로 꺼내지 않아도 부모가 이것을 간직한 채로 아이들을 대하면, 아이들도 안다. 그것을 이루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착한 아이들은 부모의 소원을 현실화하기 위해 순응하고, 이렇게 우울증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잘 떠나보내는 사랑의 아름다움

왜 이런 상황이 생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자녀를 지나치게 걱정해서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 것 같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부모가 자녀를 독립시킬 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일일이 옳은 말로, 맞는 말만 하며 가이드를 하려는 것이다.

물론 자녀가 사회에서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충고이리라 생각은 한다. 그러나 자녀가 바라는 것은 과연 '올바른 충고'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중학생 정도가 되면,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어른의 입장에서 거시적으로 설명을 들려주면 대부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그 과정을 겪지 않고 어떻게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찔한데,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세상 모든 걱정을 부모가 떠안고 교사와 대립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 문제 하나 틀려서 멘탈이 흔들리면 선생님이 책임질 거냐, 친구와 대립하는 것을 담임이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냐, 체육을 그렇게 살살하는 게 또는 무리해서 하는 게 어딨냐….

최근 몇 년 간 유행이었던 간헐적 단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호르메시스'다. 우리 몸에 가해지는 여러 가지 자극들, 스트레스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때 그것을 호르메시스라 부른다. 우리 일생에 청소년기만큼 자극이 풍성하고 다양한 때가 또 있을까? 이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환경과 그로 인한 갈등이 단순히 독으로만 여겨지고, 어른이 닦아놓은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로만 평가된다면 삶이 얼마나 단조로울까.

자녀를 참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가는 앞길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할 것이다. 잘 떠나보내는 길에 후회나 미련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조언과 충고는 해줄 수 있지만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은 자녀 본인이다. 아이들에게 적용될 호르메시스를 기대하며 오늘도 하교하는 자녀를 기쁜 마음으로 맞아주시기를 바란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연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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