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단체와 일부 의사들이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작성·유포한 의사(사직한 전공의)의 구속을 두고 '인권 유린(蹂躪)' '탄압' 등의 과격한 발언(發言)을 쏟아 내고 있다. 범죄 행위(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의사 죽이기'로 여론 몰이 하는 의사 집단의 행태는 비윤리적이며 몰염치하다. 병원에서 환자 곁을 지켰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통을 받는 의사들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블랙리스트는 추석 연휴 응급실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나온 응급실 근무 의사의 명단이었다. 이 명단이 게시된 의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들을 조롱(嘲弄)하는 댓글들이 잇따랐다. "모자란 행동" "오지라퍼(오지랖이 넓은 사람)" "사이코 성향" 등의 모욕적(侮辱的)인 표현도 달렸다. 의료계 블랙리스트는 지난 3월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들의 신상을 공개한 명단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되풀이됐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21일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유포(流布)해 구속된 의사를 면회한 뒤 취재진에게 그를 '피해자'로 지칭하면서 "구속된 전공의와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분들 모두가 정부가 만든 피해자"라며 "정부가 의사들 사이를 다 결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날 경기도의사회는 서울 이태원에서 '전공의 구속 인권 유린 규탄'을 주제로 집회를 개최했다. 이 단체는 "투쟁과 의사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국가의 기본 요소이고, 이런 정도의 소극적 의사 표현조차 말살하는 것은 북한 수준의 인권 유린"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의사회도 블랙리스트 유포를 "정부의 초법적 조치에 대한 저항 수단"이라고 표현했다.
게다가 의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구속된 의사를 두둔하고 편드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그를 돕자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블랙리스트에 동조하고 가해자를 옹호(擁護)하는 분위기 때문에 블랙리스트 유포의 피해 의사들은 숨어 지내고 있다고 한다.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고학력·전문직 집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범죄 행위가 소명(疏明)돼 구속된 것을 두고 '북한 수준의 인권 유린'이라니, 이는 법원은 물론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冒瀆)이다. 인권 유린을 당한 사람은 블랙리스트에 실명이 공개돼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의사들이지, 블랙리스트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또 블랙리스트가 정부를 향한 '저항 수단'이라는 주장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법치주의와 공동체의식에 역행하는 의사 단체의 언행은 국민들의 반감(反感)만 사게 될 뿐이다.
의료 공백이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은 수술과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해 피를 말리고 있다.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사, 간호사 등의 피로도는 극심한 상태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돌리거나, '인권 유린'과 '탄압'을 운운하며 반정부 투쟁을 할 상황이 아니다. 지난 6일 국민의힘이 의정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여야의정(與野醫政)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으나, 의료계는 여전히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이미 수시모집이 시작된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철회와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보건복지부 장·차관 등 책임자 문책(問責)을 협의체 참여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의사 단체는 정부의 잘못만 지적할 게 아니라 자신들을 향한 비판적인 여론을 받아들이고,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의사 집단의 버티기는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행태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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