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국력의 기초로 일컬어지는 제조업계가 구인난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대구 지역 산업단지 내 제조업체들은 수도권으로의 인력 유출까지 더해져 고사 직전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저출생으로 인력 부족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외국인고용법 등을 개선해 인력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상시 모집에도 바람만 날리는 현장
성서공단에서 20년간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해온 고윤희(가명·60) 대표는 1년에 설날과 추석 딱 2번밖에 쉬지 못한다. 주말도 없이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느라 거의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사무실 안에서 만난 고 씨의 왼쪽 눈은 굉장히 충혈돼있었다. 직원 수는 고작 4명뿐으로, 3명이 더 필요한데도 사람을 구할 수 없어 2년 전부턴 윤희 씨의 남편과 아들까지 공장 일을 돕고 있다.
고 대표는 "지난해 5~6번 공고를 냈는데 제대로 된 사람을 못 뽑았다"며 "올해도 계속 구인 중이지만 채용이 너무 힘들다. 내국인은 최저임금보다 20만~30만원 더 준다고 해도 일을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부족 인원' 규모를 살펴보면, 5인 미만 영세업체의 어려움이 잘 나타난다. 부족 인원은 사업체가 정상적인 경영을 위해 필요한 인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를 말한다.
고용노동부의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대구의 5인 미만 제조업체의 부족 인원은 932명으로, 600명대인 100인 미만 사업체와 비교해 1.5배가량 많다.
제조업체 사장들은 잦은 직원 교체에 따른 불량률 증가, 아울러 본인과 가족이 여러 업무를 담당하는 데서 느끼는 피로감을 호소했다.
고 대표는 "20년간 납품해온 거래처에서 최근 불량품 발생에 대한 책임으로 3천만원을 물어내라고 요구해 곤란한 상황이다. 차라리 회사를 접고 가족과 함께 아르바이트하면서 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3D 업종'이라는 인식으로 청년들 사이에서 제조업을 경시하는 분위기도 원인으로 꼽힌다.
100여 명의 직원을 둔 제조업체의 한 실장은 "구인난은 항상 있었지만 3~4년 전부터 부쩍 심해진 것 같다. 요즘은 산업기능요원 지원자조차 거의 없다"며 "젊은 지원자 중엔 면접확인서에 사인을 받기 위해 지원하는 '유령 지원자'도 많다. 구직 노력을 인정받아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문희 경북연구원 전략연구실 실장은 "영세한 업체일수록 부족한 인원 1명으로 인한 타격이 크다"며 "젊은 층은 자신의 학력에 상관없이 직장을 고르는 기준이 굉장히 높아졌다. 작은 업체일수록 근무 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어, 특히 제조업계가 만성적인 구인난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인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조업계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달성산업단지에서 차량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주상훈(가명·63) 대표는 "직원 18명 중 10명이 모두 외국인"이라며 "업무 강도가 높아 젊은 내국인은 오래 버티지 못해 무조건 40대 이상만 뽑는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부 업종에 대해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제조업과 광업 등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의 일손 부족을 해소한다는 취지에서다.
E-9(비전문취업)과 H-2(방문취업) 비자를 발급받은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중소 제조업 등에 종사할 수 있다. 이들은 내국인과 같은 근로기준법, 최저임금,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적용받는다.
법무부의 등록 외국인 통계(6월 말 기준)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E-9·H-2 체류 자격자)는 최근 3년간 증가하는 추세다.
대구의 외국인 근로자는 2019년 8천477명에서 2020~2022년 사이 7천483→5천898→5천522명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6천706명으로 반등했다. 올해는 7천667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편입된 군위군(347명)을 제외해도 전년 대비 600여 명이 늘었다.
구‧군별로 보면 산업단지가 몰려 있는 달성군(2천924명), 달서구(2천770명), 서구(747명), 북구(650명) 등에 많았다.
제조업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려면 E-9은 7일, H-2는 14일 이상 각각 내국인 채용 공고를 앞서 게시하고, '구인노력증명서'를 해당 고용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내국인 채용을 위해 노력했음을 입증하는 것.
주 대표는 "애초에 구하기 어려운 내국인 채용 공고를 내며 시간을 허비하다간 납기를 맞추지 못한다. 그래서 인력시장에서 하루 일당 주고 일할 사람을 구하거나, 도급제로 외부 인력을 빌려와 일을 시키며 버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대구고용노동청 외국인고용허가팀 관계자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구하지 못한 곳을 외국인으로 대체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내국인 보호가 전제돼야 하므로 그러한 절차가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현장에선 이에 대한 불만이 많이 제기돼 내국인 채용 공고 기간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익숙해질 만하면 본국으로… "고용 기간 늘려 달라"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력을 구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데도 여러 문제가 나타난다.
지역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는 최근 전체 직원의 33%에 해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한꺼번에 잃었다. 그중엔 10년 가까이 일한 숙련공들도 있었다. 비자가 만료된 외국인들을 고용하다가 단속에 걸려서였다. 현행 외국인고용법상 허가가 없는 외국인을 채용했다가 적발되면 3년간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없게 된다.
A대표는 "워크넷(고용노동부 고용정보시스템)에서 살펴본 내국인 이력서는 책 한 권 분량이나 된다.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국 내국인을 구할 수 없었다. 6개월 동안 주말도 없이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하고, 다른 관리자들도 토요일까지 출근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외국인 근로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해 숙련공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E-9, H-2 근로자는 최초 입국 후 3년간 머물 수 있다. 체류 기간 만료 후 1년 10개월 추가 연장할 수 있어, 최대 4년 10개월까지만 국내에 머무를 수 있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 한국 입국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데, 현지 경쟁이 치열해 재입국이 쉽지 않다.
다른 방법으로, 기한 없이 체류할 수 있는 E-7-4(숙련기능인력) 비자가 있다. 하지만 연간소득과 숙련도, 학력, 한국어 능력 등을 종합 평가하기 때문에 비자를 얻기가 쉽지 않다. 올해(6월 말 기준) 대구 내 E-7-4 체류 자격자는 514명으로, 같은 기간 E-9 체류 자격자(7천135명)의 7%에 그친다.
A대표는 "외국인이 꾸준히 일할 의향이 있고 업체도 그를 계속 쓰길 바라는데, 기한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뽑아 쓰는 건 모두에게 손해"라며 "이들을 더 오래 고용할 수 있도록 현행 제도가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용허가제 배점 기준'도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제도상에선 내국인을 많이 고용한 사업장에 높은 점수를 부여해 외국인 근로자를 우선 배정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 기숙사를 설치하면 가점을 주는데, 영세한 업체는 외국인 근로자 배정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김용현 경북연구원 경제학박사는 "영세제조업과 건설업은 국내 근로자 채용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현재 고용허가제 가점 기준의 점수 비중을 조정하거나 가중치를 부여하는 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기숙사 설치가 어려운 업체의 경우, 교통비 지원, 식사 제공 등 다른 형태의 복지에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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