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지구당 부활의 전제 조건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22대 국회가 문을 열면서 여야 정치권에서 2004년 폐지된 지구당 부활(復活) 논의가 뜨겁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일 대표 회담에서 정치 개혁의 일환(一環)으로 지구당제 도입에 적극 협의하기로 함에 따라 급물살을 타고 있다.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한나라당의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정치 개혁 차원에서 논의된 뒤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폐지됐던 지구당이 20년 만에 되살아날 공산(公算)이 커진 것이다.

정치 신인과 청년의 진입 장벽을 낮춰 정당민주주의를 활성화하고, 현역 국회의원과 원외 정치인 간 형평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지구당 부활은 긍정적 측면이 높다. 시대 변화와 엄정한 선거법 적용 등에 따라 지구당이 불법 정치자금의 온상(溫床)이 될 가능성이 낮아진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반면 '돈 안 드는 정치'를 기치로 한 지구당 폐지(廢止)는 서민들의 정치 참여 길을 봉쇄한다는 점이 가장 큰 폐해(弊害)로 지적돼 왔다. 정당의 하부 조직을 통해 시민들의 민원을 전달하고, 시민과 정치권을 이어 주는 연결고리 기능이 마비(痲痹)된 것이다. 결국 평범하고 가난한 이들의 정치 진출이 거의 불가능해진 대신 변호사, 의사, 교수, 사업가 등 중산층 이상 계층에만 정계 진출의 통로가 제한적으로 허용된 셈이다. 여야 정치권을 통틀어 국회의원 수가 가장 많은 집단이 판·검사와 변호사 출신 법조인이란 점이 이를 방증(傍證)하고 있다.

지구당 폐지의 후속 조치로 국민의힘은 당원협의회, 민주당은 지역위원회 형태로 지구당 대신 지역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구는 정당법상 공식 조직이 아니어서 후원금 모금은 물론 사무실과 유급 직원 등을 둘 수 없다. 현역 국회의원과 달리 원외 위원장과 정치 지망생들은 평시 지역 활동에 족쇄(足鎖)가 채워진 것이다. 기존 지구당의 역할을 이어받은 시도당은 그동안 수가 크게 늘고 영향력이 높아진 당원들의 요구를 감당하는 임무에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지구당 부활이 '당원 사랑방' 역할을 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지구당 부활이 정당민주주의에 제대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지구당의 민주적 운영 체계 마련 등이 전제(前提)돼야 한다. '돈선거 근절'이 지구당 폐지의 핵심 명분이었던 만큼 지구당 후원회 설치, 당비 사용, 보조금 지급 등과 관련한 회계 처리 절차 등을 법률로 명시(明示)하고, 수입과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구당이 지역 토호들의 민원 창구가 아니라 정당 의사결정에 대한 당원들의 주권 행사 통로로, 불법 정치자금의 온상이 아니라 투명한 정치자금의 활용 경로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역 국회의원과 원외 정치인 간 정치활동의 불평등을 바로잡아 당원 주권이 보장되고 정치 신인들까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지구당 운영 구조를 확립(確立)해야 한다. 지구당위원장이 아닌 정치 신인들에게 또 다른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서도 안 된다. 당 지도부가 지구당위원장을 낙점(落點)하는 구조, 지구당이 중앙당에 종속되는 구조를 혁파(革罷)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를 꿈꾸는 모든 예비 정치인들까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을 개정해야 지구당 부활의 취지(趣旨)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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