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필리핀 이모와 파독 근로자들

이상헌 세종본부장
이상헌 세종본부장

말 많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 동안 '필리핀 이모' 2명이 숙소를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단다. 이들은 사업주의 '이탈 신고' 뒤에도 소재(所在)가 확인되지 않고, 당국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잠적한 이유로는 현실적 처우(處遇)가 우선 꼽힌다. 숙소비, 세금 등을 빼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24일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급여 수준과 지급 방식에는 불만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사업 효과, 비용 적정성 등 이 사업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은 차치(且置)해 두자. 지난달 입국 당시 그들의 표정이 기대로 가득 찼던 걸 떠올리면 안타깝기만 하다. 주변에서 부러워한다는 자랑과 함께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다짐들이 선하다.

그러나 필리핀 이모들의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은 물거품이 될 위기다. 시범 사업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꿈속에서나 믿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미국 코미디언 고(故) 조지 칼린의 독설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괜스레 감정이입(感情移入)이 된 것은 60여 년 전 광부·간호사로 독일에 갔던 우리 청춘들이 겹쳐 보여서다. 정부 협약 사업, 타향으로 떠난 목표가 경제적 자유란 점 역시 닮았다. 인구 감소로 국가 존립마저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만….

당시 서독이 한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인 배경은 지금의 한국처럼 노동력 확보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구가 급감한 데다 동서 분단 탓에 옛 동독에서 일손을 구할 수도 없었다. 일자리가 필요했던 한국과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독일의 이해(利害)가 맞아떨어졌다.

1963년 '한국 광부 파견에 관한 한-독 협정서'가 체결된 이래 1977년까지 약 2만 명이 광부, 간호사로 현지에서 일했다. 유럽에 뿌리내린 첫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흩어진 사람들이란 뜻)'였다. 그들의 고된 노동은 물론 국가 경제 발전에 큰 보탬이 됐다.

딱 60년 전인 1964년 독일에서 이들을 만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은 꽤 인상적이다. "여러분, 나는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 아픕니다.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섣부른 걱정을 하자면 이번 해프닝이 급속한 고령화, 극단적인 저출산에 대한 해법으로 검토되던 이민(移民) 문호 확대 논의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란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제는 편견 또한 심화시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는 선진국 대부분이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찾은 100만 명의 외노자들이 낡은 이민 장벽에 막혀 경쟁국으로 떠난다면 우리만 손해다. 세케 에르난데스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 같은 이들은 이민자 모시기 경쟁이 불붙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만약 그들 중에 제2의 일론 머스크, 젠슨 황이 있다면 진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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