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진정 온 누리에 빛을 주는 상품권이 되려면

윤수진 사회부 기자

윤수진 기자
윤수진 기자

'온 누리'란 '온 세상'이란 뜻이다.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을 살리는 상품권에 이런 이름이 붙은 까닭은, 몇몇 거대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소상공인들과 상생해 '다 같이 잘 살아 보자'는 취지였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이 유통된 지 15년쯤 지난 지금, 온갖 꼼수가 횡행하고 있다. 2022년 기준 115억원 매출을 올렸다는 한 법인의 전통시장 점포 안에는 냉장고와 잡동사니뿐이었다. 실제 장사는 도매시장에서 하고, 주소는 냉장고뿐인 전통시장 점포에 둔 채 온누리상품권을 유통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도대체 온누리상품권 유통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거슬러 올라가니, 역시 구조적인 문제였다. 부정 유통이 의심됐지만, 이 법인은 구청의 확인을 받아 환전 한도 상향 신청까지 마친 상태였다. 온누리상품권 환전은 구청과 상인회의 확인을 받아 한도 상향 신청이 가능한데, 이 과정에서 꼼수 여부를 모두 살펴보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담당 공무원이나 조사관이 나가 현장 확인을 해도, 상인이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처벌이 약한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최근 5년 동안 전국에서 온누리상품권 부정 유통액은 539억원에 달했는데, 과태료 부과는 고작 6억8천만원(1%)에 그쳤다. 나중에 걸릴 위험이 있더라도, 부정 유통에 가담하는 것이 상인들에게 훨씬 이득이 되는 셈이다.

온누리상품권의 부정 유통에 관한 언론 보도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상황은 오랜 기간 방치됐다. 지난 5년 동안의 통계만 살펴봐도, 부정 유통 10건 중 9건 이상이 종이 상품권에서 발생했다. 기록이 남는 모바일이나 카드형 온누리상품권보다는 비교적 세무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쉽기 때문이다.

온 누리에 도움이 되라고 만든 상품권인데, 요즘 시장 상인들은 상품권 때문에 모두 끙끙 앓고 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가뜩이나 저렴한 도매시장이 온누리상품권까지 받아 부정 유통하니 타격이 이만저만 아니다"며 토로하고, 도매시장 상인들은 "중도매인들이 내미는 상품권을 다들 모르는 척 받는 분위기라, 안 받으면 바보가 된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상품권의 사용처와 할인율을 확대한다는 기조다. 부정 유통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실시한 특별 할인만 해도 부정 유통이 쉬운 종이 상품권은 은행 개점 1시간 만에 동났다. 어렵게 카드형, 모바일 상품권을 구매한 사람들은 "가맹 등록이 안 된 가게가 많아 사용할 곳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늘어놨다.

전문가들은 이미 여러 차례 부정 유통 가능성이 낮은 카드형과 모바일 온누리상품권 사용을 권장해 왔고, 주 사용 고객인 중장년층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 5월 발간된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서도 '(카드 상품권을 도입한) 가맹점은 다른 온누리상품권에는 없는 수수료, 즉 카드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재정 지원 방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이용률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애초 취지대로 사용하기는커녕 시민들의 혼란만 가중하기 쉽다. 진정 온 누리에 도움이 되는 상품권으로 거듭나려면, 사용처와 할인율 확대만큼이나 부정 유통의 뿌리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 관련 부처와 지자체, 행정기관은 낡고 허술한 제도를 개선하고, 부정 유통을 저지른 이들을 대상으로는 엄중한 처벌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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