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었다. 추석 무렵부터 시내 여러 횟집 앞에 현수막이 걸렸다. '전어 출시~'. 미주구리(물가자미)보다는 작고 도루메기보다는 커 보이는, 그러면서도 은어와 작은 전갱이 살결이 어른거리는 전어. 흰살 생선의 씹힘성과는 확연히 다른 세코시의 진미를 보여준다. 그 뼈가 너무 물러도 너무 야물어도 안 된다. 여름이 가을로 몸을 비틀 때 이놈이 봉화‧울진‧양양 송이와 함께 기지개를 켠다.
전어의 고향은 원래 남해. 그게 서남해와 동남해안으로 번졌다. 전어의 출발선은 어딜까? 광양시 '망덕포구'. 백두대간의 출발지 겸 종착지인 망덕산(일명 '망뎅이') 앞 망덕포구는 550리 섬진강과 맞물린 천혜의 전어 고향이랄 수 있다. 망덕포구엔 전국 첫 전어 조형물이 있다. 어로 현장의 고된 노역은 노동요가 삭혀준다. 그 소리를 지키는 보존회도 광양시에 있다.
◆곳곳이 전어 1번지
망덕포구에 이어 사천시 마도, 보성군 율포, 진해시 대포, 부산 을숙도 명지시장 등도 '한국 전어의 고향'이다. 망덕포구에서 섬진대교를 건너 19번도로를 따라 해안쪽으로 30분쯤 가면 오른편에 '술상전어마을'이 있고 이어 남해 선소마을, 삼천포항, 마산 어시장을 거쳐 진해만으로 오면 전어의 몸집이 튼실해진다. 이 도톰한 전어를 진해 사람들은 '떡전어'로 부른다.
그 유래가 꽤 흥미롭다. 조선 시대 한 관리가 산란기에는 전어를 못 잡도록 했다. 이에 항거하는 한 어부를 처단하려는 찰나 바다에서 전어 떼가 뛰어올라 '덕(德)' 자를 그렸다고 한다. 그곳이 내이포, 지금의 진해시 옹천 지역. 그때부터 거기서 잡힌 전어를 '덕전어'로 불리다가 떡전어로 변한다. 진해만 전어는 썰었을 때 핏빛이 진한 게 특징이다.
전어 신드롬은 언제부터 일었는가? 2000년부터 전국이 가을전어에 환장하기 시작한다. '집 나간 며느리가 좋아했던 바로 그 전어' 문구로 마케팅을 했다. '봄도다리쑥국'과 비슷한 열풍이었다. 이 무렵 지자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어축제를 론칭한다. 경남 마산시와 충남 서천군, 부산시 강서구 명지시장 등이 주도적으로 2000년부터 전어축제를 시작하면서 전어를 관광상품으로 띄운다.
서해안의 경우 인천권의 소래포구를 필두로 아래로 내려오면 충남 서천군 홍원항, 남해안권으로 오면 보성군 율포로부터 전남 광양, 경남 하동·남해·사천·마산·진해, 그리고 부산까지 전 수역이 전어권이다. 하지만 동해안권은 상대적으로 전어 불모지. 포항에서도 한때 전어가 많이 잡혔는데 신항만방파제가 물길을 막는 바람에 전어 명맥이 끊어진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전어는 가을의 전령사는 아니었다. 난류성 전어는 해마다 수온이 오르면서 서해안권에서도 잡히기 시작한다. 30여 년 전만 해도 서해안에서는 전어를 보기 힘들었다. 남해안권에서는 8월부터 전어가 출몰한다. 9월로 접어들면 기름기가 너무 많아 회보다 구이가 낫다. 남해 전어축제는 서해보다 얼추 한달 정도 빨리 시작한다.
낙동강 하구 부산 서쪽 끝에 있는 '명지시장'은 전어축제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개최한 곳 중 하나다. 나도 몇 년전 지인의 소개로 명지시장 전어골목에서 먹어봤는데 써는 방식이 아주 독특하다.
명지시장은 회 전문 시장이다. 낙동강과 바다가 합류하는 지역이라 철마다 맛있는 생선이 지천으로 넘쳐났다. 가덕도와 명지 앞바다 일대에서 잡은 전어를 전국 최초로 살아 있는 전어회로 선보인 곳 중 한 군데이다. 때문에 '명지시장하면 전어회'란 등식이 성립된다.
명지에는 전어회의 고향답게 전어회를 장만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우선 뼈째 잘게 써는 '전어뼈회'와 포를 떠서 국수처럼 길게 써는 '전어포회', 전어를 통째로 네다섯 토막 큼지막하게 썰어내는 '전어넙데기뼈회'와 '전어넙데기포회' 등이 있다. 넙데기회는 회 맛을 잘 아는 전어회꾼들이 씹는 맛을 한층 더하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다.
◆ 초창기엔 마이너 생선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가을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말'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가을에 잡히는 전어의 맛이 일품이며 가격도 비쌌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충청도, 경상도, 함경도에 전어가 많이 난다'고 기록돼 있다.
전어의 한자는 두 가지. '전어'(錢魚)는 돈과 결부된다. 어떤 이는 '전어'(前魚)로 쓰기도 한다. 전어는 절대 뒤로 물러나지 않고 계속 앞으로 헤엄치기 때문이란다. 일본에선 전어를 '고노시로'라 하는데 이는 '자식 대신'이란 뜻이다. 무슨 유래가 있을까? 옛날 어떤 부자에게 첩으로 딸을 주게 된 아버지가 관에 전어를 넣어 화장하고 딸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여 어려움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담긴 고노시로가 훗날 전어의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써는 방식도 제각각
전어의 경우, 써는 방식에 따라 맛이 사뭇 달라진다. 한우도 마찬가지지만 칼질에 따라 천차만별의 식감을 드러낸다.
전어는 뼈회로 먹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뼈가 그대로 든 몸통을 사선으로 썬다. 그럼 단면은 ㅅ자, 또는 화살촉, 엽전 모양 등이 된다. 경남 사천 쪽에서는 통마리를 즐기는 마니아도 많다. 통마리는 대가리와 내장, 꼬리만 제거해서 몸통째 내는 거다.
광양권의 전어는 전라도와 경상도 전어의 절충형. 육질도 적당하고 기름진 정도도 미디엄 정도. 전라도권은 경상도권보다 더 두툼하게 썬다. 그래서 광양만 망덕포구 전어는 한때 한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전어 맛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전라도권에서는 전어회 위에 각종 고명이 특별하게 올라간다. 참깨와 참기름이 뿌려진다. 보성군 율포 앞 득량만 전어는 전체적으로 흰색에 가까운 은빛에 등에는 까만 점들이 줄지어 박혀 있다. 푸른빛이 전혀 돌지 않아 경남의 전어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회도 여러 스타일이 있지만 구이도 본연의 맛을 내기 무척 어렵다. 대도시에 있는 전어 구이집은 꼬리나 머리를 검게 태우고 속은 제대로 익히지 않은 채 내놓기 일쑤다. 뼈가 억세진 전어를 구이로 먹긴 하지만 뼈가 딱딱하게 씹힐 정도면 '낙제'. 통조림용 꽁치처럼 뼈는 있지만 살처럼 느껴져야 제대로 된 전어구이다. 1년산 작은 초가을 전어라야 이런 상태가 된다. 철 지난 전어구이는 솔직히 '죽을 맛'이다. 튀김옷과 기름기와 뼈와 살점이 따로 노는 미꾸라지와 은어 튀김을 먹는 고역과 마찬가지다. 제철 생선이 승부처랄 수밖에 없다.
경상도에서는 전어를 회나 구이로 먹지만 전라도에서는 '전어무침'이 빠지지 않는다. 전남 보성 율포 토박이들이 유별나게 그걸 즐긴다. 그리고 남도 음식 마니아는 유독 이 젓갈을 좋아한다. 바로 전어 내장으로 발효시킨 '밤젓'이다. 민물새우를 염장해 만든 토하젓과 함께 남도음식의 양대 젓갈로 평가된다.
◆ 재밌는 전어의 생리
전어는 활어 상태로 먹기 힘든다. 그래서 자연산 전어는 '하루살이'로 불린다. 워낙 성질이 지랄 맞은 탓이다. 그래서 '양식 전어'가 투입됐다. 전어 양식산과 자연산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뭘까? 꼬리를 보면 된다. 깊은 바다에 사는 자연산은 꼬리가 노란빛이고 빗자루처럼 거칠다. 반면 양식장에 갇혀 사는 양식은 수면 가까운 곳에 지내기 때문에 태양빛을 많이 받아 검은색을 띠며 둥글게 잘 정리돼 있다. 제철에는 물량이 딸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대도시에서 파는 상당수 전어는 양식이라 보면 된다.
고수들은 전어를 수조에 넣기 전에 해수의 간을 본다. 너무 짜면 못 살기 때문에 민물을 섞는다. 그래도 자연산은 이틀을 못 버틴다. 양식은 더 오래 산다. 식당주로선 양식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전어는 야행성이다. 새벽에 출어한다. '바다 인문학자'로 평가받는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가 전어 잡이 현장의 정보를 알려준다. 작은 배에서 두어 명이 자망으로 잡는 건 '따닥발이 전어', 큰 배에서 12~15명이 잡는 건 '이수구리 전어'라 한다. 따닥발이는 큰 그물로 잡아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배에서 작은 그물로 잡은 다음 하나씩 손으로 떼어낸다. 신선한 데다 스트레스를 덜 받아 맛이 더 좋다.
전어는 평균적으로 만 1년이면 11㎝ 전후, 2년이면 16㎝, 3년이면 18㎝, 6년이면 22㎝ 전후의 크기다. 드물게 30㎝까지 자라기도 한다. 20㎝가 넘는 큰 전어는 '떡전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2년 전후 15㎝짜리, 일본 사람들은 10㎝ 전후 전어를 가장 즐긴다. 한국에선 가을전어, 일본에서는 어린 봄 전어를 최고로 친다. 일본에서는 전어회 대신 스시 '네타(밥 위에 얹는 재료)'용으로 애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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