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수요 둔화로 성장세가 주춤한 국내 배터리 업계가 차세대 기술개발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침체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기술 격차가 경쟁력
가격 경쟁력이 있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개발을 통해 중국 업체와의 격차를 해소하고,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앞세워 초격차 우위를 이어간다는 복안이다.
고주영 삼성SDI 부사장은 2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2차전지 전문 콘퍼런스 'KABC 2024'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중저가 제품, LFP 배터리 등에 대해 좀 늦은 상황이기는 하다"면서도 "연구능력, 기술력으로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 부사장은 "내연엔진 차량이 5분 주유로 450∼650㎞의 주행 거리를 확보하는 것과 비교해 전기차는 고성능 차량의 경우 26분 충전에 413㎞ 수준의 주행이 가능해 성능 면에서 불편함이 있다"며 "전기차의 목표는 내연엔진 차량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터리 성능 고도화를 통해 내연엔진 차량에 버금가는 짧은 충전(주유) 시간과 긴 주행거리를 갖춘 배터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고 부사장은 "내연엔진 차량과 같은 주행거리를 만들려면 팩을 작고 가볍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고체 전지는 안전하고 팩이 가벼워 자동차 무게를 줄이고 자동차 출력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다"며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계획을 재확인했다.
이존하 SK온 부사장은 "LFP는 이미 개발돼 있고, 코스트(가격)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보완할 것이 있어 그 부분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최종적으로는 코발트가 없는 '코발트 프리' 배터리를 생각하고 있다"며 "에너지 밀도를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전압을 높이는 게 주 방향이라 여기에 맞춰서 개발하고 있다"며 "차세대 배터리의 경우 고분자 산화물계 복합계나 황화물계 전고체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부사장은 "현재는 주행 거리도 중요하지만 급속 충전, 안전성 측면도 중요하며, 보조금 축소, 폐지 등으로 가격적인 요구가 있다"고 했다.
◆ 캐즘 벗어나기 쉽지 않아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직격탄을 맞은 국내 배터리 업계의 '보릿고개'가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향후 전기차 대중화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동시에 제기됐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KABC 2024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배터리 산업의 캐즘 이슈는 미국 금리가 내린다고 해서, 전기차 충전소 몇 개가 더 생긴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국가 전략으로 전기차 보급 속도를 조절한다면 캐즘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특히 일본 배터리 산업을 거론하며 "현재 한국 배터리 산업이 직면한 상황은 2010년대 일본과 유사하다"며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리튬코발트계(LCO) 전지 상용화에 성공하며 1990년대 전 세계 배터리 점유율의 98%를 차지했으나, 2010년 이후 한국과 중국에 밀리며 현재 점유율은 14% 수준이다.
그는 "과거 일본이 한국의 성장세에 당황한 모습은 현재 중국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성장으로 한국이 역전당하는 것과 유사하다"며 "중국과의 격차는 쉽게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강 회장은 현 상황이 국내 배터리 업계의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차세대 배터리 개발, 공급망 내재화 등을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업은행은 지난 5년간 배터리 산업에 15조원을 투자했다. 반도체에 6조∼7조원을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전기차에 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 분야의 성패에 한국 경제와 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광주 SNE리서치 대표는 "캐즘이라는 상황은 국내 산업이 쓰는 용어이고, 사실 중국은 캐즘이 아니다"라며 "이제부터는 중국의 배터리 산업과 국가 정책 등을 한국이 벤치마킹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국내 배터리 업계가 4∼5년 전 LFP를 굉장히 과소평가했다"며 "2025년 LFP를 OEM에 공급한다고 해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에 빨리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삼성SDI가 2027년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하는 등 차세대 배터리는 중국과 비교해 한국이 앞선다고 생각한다"며 "LFP를 만들어 준비하는 동안 차세대 배터리도 빠르게 준비해 무기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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