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대표 원로화가인 홍현기(77) 작가의 개인전이 환갤러리(대구 중구 명륜로26길 5)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20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의 원로작가 회고전 이후 4년 만의 첫 개인전이다.
당시 회고전은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와 맞물려 한차례 연기되는 등 녹록치 않은 환경 속에 진행됐다. 하지만 그는 회고전에 대해 아쉬움보다 행복함이 훨씬 컸다고 회상했다. 그는 "50여 년간 미술을 해오며 화집 하나 남기는 것이 소박한 소망이었다"며 "40여 일간 2층 전시장 전부를 쓰며 내가 가진 작품을 마음껏 내보일 수 있었고, 230페이지나 되는 화집과 영상까지 남겼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었겠나"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기존에 선보여온 평면 페인팅과 지팡이 설치 시리즈 등을 벗어난 새로운 작품으로 채워졌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먹 향기가 훅 끼친다. 실제 돌을 화면에 붙이고 그 위에 먹으로 글과 그림을 얹어서다.
"지금까지 잘 알려진 작품들을 다시 그대로 개인전에 갖고 오는 건 매너리즘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 고민을 하던 중 형제봉 근처를 오르내리다 납작한 돌멩이 하나가 눈에 띄었죠. 그걸 보는 순간, 돌이 입체라는 고정관념이 깨졌어요. 평면에만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 평평한 돌은 평면인가, 입체인가. 그러한 질문을 하며 돌을 줍고, 글과 그림을 더했죠."
물감이 아닌 먹을 사용한 것에 대해, 그는 '먹에 마음이 끌려서'라고 표현했다. 그는 "가장 닳고 닳은 주제가 가장 새로운 것"이라는 파스칼 키냐르의 말을 인용하며, 먹은 우리에게는 닳고 닳은 주제이지만 가장 새로운 재료이자, 소멸의 미학을 담은 신비하고 대단한 재료라고 극찬했다.
그의 50여 년 화업의 화두는 '신화-내재율'. 마당에 빨간 장미가 피어난 뒤 시들해지다 어느새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본 그는 자연이 어디에서 어떤 에너지를 받아 생기를 얻고, 또 그 생기는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잎사귀는 반드시 땅으로 돌아간다는 '낙엽귀근'과 같은, 생과 사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는 우주의 질서가 담고 있는 리듬, 즉 내재율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는 "오랜 기간 수많은 질문과 사유를 지속해왔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답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더듬어나가고 싶은 화두"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작에서 눈에 띄는 글씨는 순명(順命). 작가는 "역행하거나 무리하거나 잔꾀부리지 않고 명을 순하게 받아들이는 진솔한 인간의 태도를 말하고 싶었다. 관람객들도 그러한 메시지를 알아주면 좋겠다"며 "앞으로의 내 삶도 순명하며, 마음 가는 대로 살려고 한다"고 했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일요일은 휴관한다. 053-710-5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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