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고령 세계유산축제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하늘신 이비가(夷毗訶)와 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감응(感應)해 대가야의 초대 이진아시왕(뇌질주일·腦窒朱日)을 낳았다. 1천600여 년 전 물 맑고 공기 좋은 가야산(1,433m) 중턱에서다. 가야산의 지맥은 동쪽으로 겹겹이 산봉우리를 수놓았고,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이르러 주산(321m)으로 우뚝 섰다. 주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동쪽 구릉(丘陵)에는 옛 대가야의 궁성(宮城) 터와 대가야읍이 자리 잡고 있다.

주산 능선을 따라 산봉우리처럼 솟은 무덤들. 천 년을 훌쩍 넘어 다음 천 년을 기다리며 말없이 지켜온 수백, 수천의 영혼들이다. 바로 지산동고분군이다. 주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은 주 능선에 장관을 이룬 무덤은 읍내를 휘감아 고아리 벽화고분에까지 뻗어 있다. 대가야 왕과 왕족은 그렇게 높은 곳에 누워 읍내를 내려다보며 후손들을 지키고 있다. 흙을 쌓은 형태가 남아 있는 무덤 200기(基)를 비롯해 주 능선 동쪽 가지 능선의 작은 무덤까지 합하면 2천여 기에 달한다. 지산동 44호, 45호분(墳)을 비롯한 큰 무덤은 바닥 지름이 무려 20m를 넘는다. 금동관, 갑옷과 투구, 귀걸이 등 숱한 유물(遺物)과 왜(倭)와의 교류를 상징하는 야광조개국자, 중국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청동그릇 등이 쏟아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가야 하지왕이 중국에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금관가야의 김해, 아라가야 함안, 소가야 고성, 비화가야 창녕 등지에도 가야 지배층의 무덤이 남아 있지만, 그 규모와 수, 유물의 양과 질은 대가야 지산동고분이 압도(壓倒)한다.

지산동고분군을 비롯한 7개 고분군으로 구성된 '가야고분군'이 지난해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登載)됐다. 고령군은 '잊혀진 가야 문명, 가야고분군으로 기억되다'란 주제로 23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대가야읍 지산동고분군과 대가야박물관 일대에서 '2024 세계유산축제'를 펼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하고, 가야 문명을 대표하는 독보(獨步)적인 가야고분군의 가치를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이번 축제를 통해 철과 가야금을 무기와 문화로 내세워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520년간 경남 서남부와 호남 동부지역을 호령했던 대가야의 숨결을 만끽하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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