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장학재단, '홀로그램' 인가?

박상전 사회부장
박상전 사회부장

한국장학재단이 홍보비를 지출하면서 특정 언론에 편중 집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최근 6년간 홍보비 71억원 가운데 36억원을 특정 공중파 방송국에 몰아 준 것이다. 올해 집행액 24억원 가운데 22억원도 같은 방송사에 집중했다.

장학재단은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방침에 따라 지난 2015년 서울에서 대구 동구 신암동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무너져 가는 지역 경제를 회생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 달라는 게 정부측 요구였다. 하지만 대구로 이사 온 뒤에도 장학재단의 중앙 몰아주기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2021년부터 2년간 본사 소재 지역 언론사에 배정한 홍보비는 단 한 푼도 없었다. 국가 정책에 반할 뿐 아니라 '지역민은 장학재단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된다'는 식의, 철저히 지방을 무시하는 행보로 밖에 볼 수 없는 처사다.

장학재단의 비효율적 홍보비 남용은 지난 2011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든든학자금제도'란 단일항목 사업 홍보비에 31억원을 쏟아부었으나, 실적은 목표(70만명 예상) 대비 25%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문제를 지적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실효성 없는 정책에 수십억원 혈세를 날렸다. 같은 기간 농촌출신대학생학자금융자사업홍보비는 고작 3억원인 것과 대비된다"고 꼬집었다.

장학재단 홍보비 편중에 대한 비판은 지방으로 방향을 틀어달라는 근시안적 요구가 아니다. 효율성 있게 지출하라는 당연한 지적이다. 이왕이면 정부 의도에 맞게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적절한 주장이기도 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지방-중앙 간의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현실에서, 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들마저 지역을 외면한다면 국토균형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지역을 우선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저돌적으로 추진해도 모자란 판에 오히려 지역을 패싱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는 시대를 역행하는 반역사적 퇴행에 불과하다. 불공정 거래나 수도권 역차별이라는 시비를 양산하더라도, 기울어진 운동장의 평탄화 작업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야 한다. 지역 우대 정책은 아무리 과감히 시도하더라도 모자란 현실이다.

불공정 거래 논란을 감수하면서도 지역을 우대한 정책도 있었다. 지난 코로나 정국에서 국토교통부는 산하 기관들에 각종 사업에 지역 업체를 최우선으로 배려하라고 지시했고, 한국부동산원은 사내 모든 인쇄물을 대구 업체에 몰아준 적이 있다. 자금·기술력에서 달리는 지역 영세 인쇄 업체는 당시 부동산원에 큰 고마움을 표했다. 3년이 지났으나 이번 사례는 지역과의 상생에 대표적 모범 정책으로 꼽히고 있다.

지역을 외면한 장학재단의 정책은 변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관행화된 교육부의 방침이고, '홍보비 운영은 중앙에서 컨트롤한다'는 논리로 예봉을 피해 가기에만 바쁘다. 중앙부처 출입 기자만 우선시하면서 지역 언론을 계속 뒷전으로 밀어낸다면 지역과의 소통 창구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지역민도 역할 없는 공공기관을 바라보면서 해당 기관의 존재를 기억에서 지워버릴 게 뻔하다. 지역 연대감을 상실한 장학재단은 존재하지만 잡히지 않는 '홀로그램화'가 될 처지에 놓일 것이다. 중앙에 종속된 기관으로 남아 있을 거라면 메타버스에서나 만들면 될 것을, 굳이 터까지 옮길 필요가 있었으냐는 비아냥도 피해 갈 수 없어 보인다. 무관심 속에서 야반도주하듯이 수도권으로 역이전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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