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쏘아올린 이른바 '한반도 두 국가론'을 놓고 야권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당의 입장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부 인사들은 남북관계의 현실적 방향이라고도 주장하며 맞서는 등 야권의 미묘한 분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임 전 비서실장의 발언을 두고 586 운동권 세력은 동조화, 친 이재명계 인사들은 부정적, 김대중 정부 및 문재인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동조와 비판이 혼재하는 등 야권 세력별로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금투세 폐지, 종부세 유연화 등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지만 실용주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결국은 운동권 세력과는 결이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이고, 이것이 야권 분화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잇다"고 분석했다.
◆ 야권 일부, 두 국가론 현실적…새 한반도 정책 필요
26일 민주당에 따르면 임 전 실장은 지난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통일하지 말자',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촉발했다.
당 지도부는 '당의 입장과 다르다'며 즉각 선을 그었지만 일부에서는 임 전 실장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
운동권 출신 이연희 민주당 의원은 임 전 실장의 발언 다음날인 지난 20일 SNS를 통해 "윤석열 정권의 남북 대결주의 회귀에 대한 분노와 절망 그리고 차기 민주 정부가 나아가야 할 남북 정책의 현실적 방향이라는 점에서 저는 공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정권교체로 다시 민주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과거처럼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 화해와 협력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임 전 실장의 발언이 한반도 정책을 새롭게 설계하는 평화 담론 논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서 일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그 얘기(임 전 실장 발언)가 옳다고 생각한다"며 "1991년에 (남북 동시) 유엔 가입을 했으니 사실은 그때부터 두 개 국가다. 결국 남북 관계는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힘을 실었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무력 통일과 흡수통일을 배제하고, 교류 협력을 활성화하면서 통일은 후대에 맡기자고 했는데, 이는 임 전 실장이 말한 것과 비슷한 논리"라고 했다.
또 다른 운동권 출신 한 의원은 "임종석 (전)실장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단순히 통일하지 말자는 것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며 "두 국가론은 보수 진영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이고, 시대 상황에 맞게 남북 관계를 다시 보자는 그런 의미가 아니겠나"라고 설명했다.
◆ 민주 지도부, 두 국가론 부정적…헌법 위배 가능성 있어
현재까지 민주당 주류는 두 국가론이 헌법에 위배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화 통일을 지향해온 민주 진영의 큰 흐름에도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국혁신당은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표도 두 국가론 논란이 확산하자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주류인 친이재명계 인사들도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앞서 김민석 최고위원도 지난 22일 SNS를 통해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비판돼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설득할지언정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평화적 장기 공존 후 통일을 후대에 맡긴다는 역사적 공감대를 도발적으로 바꾸고 두 개의 국가론으로 건너뛸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경색된 남북 관계로 인해 두 국가론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헌법 제4조에 적시한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및 제3조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것과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의원은 "안타까운 심정에서 평화를 우선 정착시키는 데 집중하자는 취지로 얘기했을 것"이라면서도 "두 국가론은 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도 "임 전 비서실장의 '두 개의 한국, 통일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자'는 발언은 햇볕정책과 비슷(하다). 이것을 오해해 통일하지 말자는 등 냉소적 접근은 안 된다"면서도 "물론 학자는 주장이 가능하나 현역 정치인의 발언은 성급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도 임 전 실장의 두 국가론을 질타했다.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회의 상임의장은 "문재인 정부 평화 정책의 실패는 분단 체제에 대한 인식 실패가 초래한 예견된 결과"라며 "문 전 대통령도 무지했고, 임 전 실장도 무지했다. 이런 무지가 평화의 실패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맹비난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두 국가론에 대해 "개념 없는 소리이자 논리적이지 못한 정치적 발언이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사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무책임하게 받아들이고,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포장하는 것이 맞는가"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최근 금융투자소득세, 상속세, 종부세 완화 등 기존 민주당 정책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이른바 감세 우클릭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에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명계와 기존 당내 주류였고 문 정부 정책을 주도했던 운동권이 의견 차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두 국가론을 두고 또다시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면서 새로운 계파 분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두 국가론을 주장한 임 전 실장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 출신으로 운동권을 상징하는 인물 중에 한명이다. 국회의원을 거쳐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맡는 등 운동권 중심 친문재인계 내에서도 핵심이다.
다만 지난 22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공천을 두고 당 지도부와 갈등을 보이며 대립 끝에 물러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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