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오전 의성군 비안면 비안만세센터.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대구경북(TK)신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를 앞두고 주민 수백여 명이 모인 집회가 한창이었다.
집회 분위기는 크게 격앙된 상태였다. 주민들은 이날 설명회를 주관한 국토교통부보다는 '플랜 B'를 꺼내 든 홍준표 대구시장을 강하게 비난했다.
홍 시장의 '플랜 B'는 TK신공항 화물터미널 위치가 이달 말까지 확정되지 않으면 신공항 후보지를 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에서 군위 우보면으로 옮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주민들은 홍 시장이 의성 군민들을 '떼법' '억지' 등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집회 막바지에는 홍 시장을 두고 인신공격성 막말이 구호로 나오기도 했다.
흉흉한 분위기는 주민설명회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설명회는 관련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중단됐다. 일부 주민들은 설명회를 듣기 전에 질문부터 하겠다고 나섰다.
국토부 관계자가 "질의 응답을 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 10분만 설명을 들어 달라"고 읍소했지만, 항의는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은 마이크를 잡고 "화물터미널 위치가 결정되지 않았는데 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했느냐"고 거듭 반발했다.
결국 20여 분 만에 주민들은 "이런 설명회는 들을 필요가 없다"며 집단 퇴장했다. 국토부와 용역 수행사 관계자는 주민 대부분이 자리를 뜰 때까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윽고 주민들이 모두 떠나자 "법적 절차에 따라 설명회를 계속하겠다"고 일어섰다.
이를 본 주민들은 전원을 내리고 빔프로젝트 스크린을 거둬들였다. 그래도 육성으로 설명 자료를 읽자 아예 강당에 배치한 의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르르 치워지는 의자들과 취재진을 앞에 둔 육성 설명. '주민 없는 주민설명회'가 빚어낸 촌극이었다.
이날 주민설명회가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은 예견됐던 상황이었다. 비안만세센터 앞은 집회 신고가 된 상태였고, 주민들이 일단 설명회에 참석한 후 이번 설명회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대구시와 국토부를 성토한 후 설명회를 저지할 것이라는 예상도 파다했다.
며칠 전, 의성군을 미리 방문했던 국토부 관계자들도 이 같은 분위기를 몰랐을 리 없다. 이날 참석한 국토부 관계자들도 모두 실무 담당자들이었다.
이날 주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설명회 자료에 '화물터미널 위치는 관계 기관 간에 협의 중'이라고 명시한 점도 격앙된 분위기를 부추겼다.
주민들은 "화물터미널이 빠진 상태에서 분석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왜 하느냐" "협의 중인데도 이미 답을 정해 두고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하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략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가 법적 절차에 따라 마련된 것은 맞다. 그러나 굳이 지금 이 시점에 설명회를 열어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화물기 전용 터미널 위치 문제가 풀기 어려운 매듭인 것은 사실이다. 국토부가 제안한 활주로 동측안과 경북도·의성군의 서측안의 접점을 찾지 못했고, '플랜 B' 이슈까지 겹치면서 불안감은 금세 터질 듯한 풍선처럼 부푼 상태다.
법적 절차라고 하더라도 이 같은 상황을 이해했다면 융통성 있는 접근이 필요했다. 굳이 설명회를 열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난을 받고, 주민들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릴 이유가 있었을까.
무릇 소통은 답답하고, 합의 과정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법이다. 남은 절차들에 있어 국토부의 유연하고 세심한 접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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