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복수(復讐)의 무한궤도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해방시킨 노비안검법과 인재 등용을 위한 과거제 도입 등 파격적인 제도 시행으로 역사 교과서에 개혁 군주로 이름을 올린 고려 4대 임금 광종에게는 '그저 빛'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시쳇말로 초반 끗발이 셌다. 그의 재위 27년 동안 개혁적인 측면이 두드러진 것은 초기 10년 동안의 기록이다.

잇단 개혁적 시도는 호족의 기세를 누르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었다. 왕권 강화를 빌미로 간신들의 참소(譖訴)가 범람했고 억울한 누명도 함께 늘었다. 거짓을 가려야 하니 정적(政敵)보다 먼저 고변(告變)하는 게 상책이었다. 의혹만으로 사람을 잡는 게 고변이었다. 죄가 없는 게 밝혀져도 겨우 목숨만 부지할 정도로 고문당한 탓에 오래 살기 어려웠다. 고려 개국 40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음에도 살아남은 개국공신은 40명 남짓에 불과했다고 한다.

악의적으로 상대를 밟아 뭉개는 변란을 보며 자란 광종의 아들 경종은 전무후무한 윤허를 내린다. 사적 복수를 허용한 '복수법(復讐法)'이다. 광종 집권기 난무한 참소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이 복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무력이 정의 실현의 척도가 되는 약육강식의 지옥문을 국가가 연 셈이었다. 악용하는 사례가 나오지 않는 게 이상했다. 정적 제거에 국법이 긴요하게 쓰였다. 재상(宰相)이던 왕선(王詵)이 왕명(王命)이라며 경종의 삼촌이자 태조의 아들인 천안부원군을 죽이고서야 살육의 광풍이 멎을 수 있었다.

엄연히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정치권도 물리력만 동원하지 않았을 뿐 고려의 복수법 못잖은 보복이 일상이다. 대북 문제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것이라면 여야를 막론하고 합력하는 분위기가 깨진 지 오래다. 대적관(對敵觀)부터 판이하다. 근래 들어 의견 일치를 본 것은 체육계를 성토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현안 질의 정도가 유일했다.

합의라는 맹약(盟約)을 깨고도 당당히 대항하는 데 무람없다. 지난달 27일 있은 여당 추천 국가인권위원 선출안 부결 등 일련의 과정이 그랬다. 여야 추천 위원 모두를 통과시키기로 해 놓고 야당은 여당 추천 위원 선출안을 부결시켰다. '사기꾼'이라는 구호가 터졌고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냐"며 격분한 건 수순이었다. 오히려 야당은 "국민의 뒤통수를 때린 사람이 누구냐"며 맞섰다. 그리고 30분쯤 뒤 대통령 재의요구권으로 재표결한 방송 4법, 노란봉투법,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이 부결되자 야당은 항의 집회를 열었다.

무조건적 반대와 다툼이 습관적이다. 공고한 자신들만의 영역 바깥의 의견은 배척 대상이다. 지지 세력의 반응이 뜨거울수록 정치 혐오감도 강해지지만, '토착 왜구 섬멸' 따위의 헛웃음 나는 구호와 깊은 혐오의 표식들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부유한다. 무고를 엄히 다스리는 형법이 있음에도 국회는 면책특권을 등에 업고 가짜 뉴스 양산의 전진기지가 된다. 음모론이라는 도파민 샤워를 마친 가짜 뉴스는 확증편향의 고속도로를 타고 급속도로 퍼진다. 이래서 될 일이 아니다.

키가 높이 자라는 일부 수종에서는 수관기피(樹冠忌避) 현상을 볼 수 있다. 지도의 경계처럼 금이 가 있는 모습이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듯해 코로나 시국에 인용되기도 했다. 공존을 위한 배려라는 추측이 유력한 설이다. 그래야만 나무의 밑동까지 햇볕이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면 공멸한다는 걸 식물들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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