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정몽규의 마이 웨이(My way)

채정민 체육부 차장
채정민 체육부 차장

부정적인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들 아니라는데 옳다고 강변한다. 대화를 강조하면서 정작 제대로 된 소통이 없다. 저질러 놓고 뒷수습을 하지 않는다(그건 아랫사람 몫이다). 시간이 약일 거라 생각한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고 여긴다. 보여 주기식 행사를 벌이는 데 진심이다. 내 행동은 결국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 우긴다.

낯이 익다. 현 정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처럼 보여서다. 신문, 방송마다 이런 보도로 넘친다. 그러나 여기서 하려는 말은 현 정권에 대한 게 아니다. 대한축구협회 등 체육계 얘기다. 현 정권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70%에 육박한단다. 답답하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다. 그런데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지지도는 더 낮을 듯하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최근 홍명보 전 울산HD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는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이미 축구협회는 승부 조작 인사에 대한 사면 등 막무가내 행정으로 여러 차례 질타를 받았던 터. 정 회장에 대한 퇴진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 이유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네 번째 연임을 꿈꾸는 모양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도 이 사태에 참전했다. 2일 감독 선임 관련 감사에 대한 중간 발표를 진행했다.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 여러 번 내부 규정을 어겼다는 게 문체부의 지적이다. 권한 없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최종적으로 감독 후보를 추천했고, 면접 과정도 불투명·불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전임자인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뽑을 때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기능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일이 진행됐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 회장은 끝까지 버티려는 듯하다. 축구 행정에 부당한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기대 보려는 걸까. 대표 팀이 경기를 잘하면 거기에 묻어가겠다는 심산일 수도 있겠다. 선수들은 무슨 죄인가. 열띤 응원을 받으며 뛰어도 힘들건만, 비난(선수들을 향한 건 아니지만) 속에 경기를 치러야 하는 게 안쓰럽다.

정 회장의 공로(?)가 없는 건 아니다. 그토록 보기 힘들다는 '여야 대통합'을 정 회장이 이뤄 냈다.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던 여당과 야당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입을 모아 정 회장을 몰아세웠다. 곧 있을 국정감사에서 여야는 다시 한번 같은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도 '하나'가 되는 분위기다. 정 회장 덕분이다.

지난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참석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지난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참석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이기흥 대한체육회장도 정 회장의 덕을 봤다. 비난의 화살이 정 회장에게 쏠려 이 회장 문제는 뒤로 살짝 밀려났다. 그는 체육회장 3선 도전을 꿈꿔 이를 막으려는 문체부와 갈등을 빚는 중이다. 이 회장은 막말과 불통 행보로 비판이 적지 않다. 정신력을 키운다며 대표 팀 선수들을 해병대 캠프로 몰아넣고, 파리 올림픽에서 대표 팀이 선전하자 '해병대 입소 훈련의 결과물'이라 자화자찬해 구시대적이란 지적도 받았다.

조직의 수장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사태를 키우고 있다. 수장의 식견이 좁은데 고집마저 센 게 문제다. 그러니 쓴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반면 욕심은 많다. 능력이 안 되는데도 누구처럼 빛나고 싶고, 오랫동안 좋은 대접을 받고 싶어 하니 더 큰 화를 부른다. 대충 덮어 두면 이런 일은 또 반복된다. 치러야 할 대가도 더 커진다. 고독한 승부사 행세를 계속하도록 내버려둘 순 없다. 결단해야 할 때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