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전쟁과 평화 두 모습의 일본과 새로운 한일 관계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일본의 대하소설 '대망'은 저자 '야마오카 소하치'가 태평양전쟁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났을 때 절망에 빠진 일본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도쿄신문에 연재한 방대한 분량의 역사소설이다. '대망'은 일본의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세 명의 영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중국의 삼국지에 비견되는 장편 대하소설이다.

세 영웅 중 도요토미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평정한 후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걸고 조선을 침략하여 동북아시아에 세계대전급 전쟁과 혼란을 가져왔다. 이에 반하여 도쿠가와는 임진왜란에 직접 참전하지 않았고 도요토미 사망 후 일본의 패권을 놓고 도요토미가의 서군과 벌인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여 오랜 전란을 끝내고 일본에 평화를 가져왔다.

그가 세운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과도 260여 년간 평화롭게 지냈으며 이때 조선에서는 통신사를 일본에 보내 선린 관계를 지속하였다. 일본에서 도요토미는 전쟁을, 도쿠가와는 인내와 평화를 상징한다. 역사상 일본이 항상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우리와 전쟁을 벌인 것은 아니며 우리나라와 오랫동안 평화를 지속했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사쓰마번과 죠슈번은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가 조선을 침범했을 때 앞장섰다. 도요토미 사후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도요토미가의 서군으로 참전하였다가 도쿠가와가의 동군에 패하였다. 이에 따라 도쿠가와 막부 260여 년간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중심 세력으로 등용되지 못하였고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19세기 막부 말기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과 혁신 정치를 통하여 힘을 길렀고 1866년 삿초동맹을 결성하여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렸다. 이어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중심 인물들은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을 근대화시키고 또다시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화하였다. 나아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마침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으나 패망하였다.

일본의 정치인은 세습 정치인인 경우가 많다. 1989년 이후 총리의 70%가 세습 정치인이다. 이들 세습 정치인 중에는 조부나 증조부, 외조부가 사쓰마번과 조슈번 출신인 경우가 많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조슈번 출신이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버지는 사쓰마번 출신이다.

이들 세습 정치인들의 다수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며 한국인을 혐오하는 동시에 군국주의 부활을 꿈꾼다. 이들 극우 정치인의 존재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우호 협력 관계에 신뢰를 가지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지난 1일 당내 비주류이자 온건파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총재가 일본의 102대 총리로 공식 선출됐다. 보수 강경파였던 아베 전 총리를 비판하며 비주류로 지내왔던 이시바 총리는 한일 관계에 비교적 전향적이다. 그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하여 공식 사죄한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 이후 한일 관계 개선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는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계속 사죄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극우 정치인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의 반일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전향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는 한일의 미래 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한일 간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을 기회로 우리는 친일이니 반일이니 이념보다는 전략과 실용으로 우리의 실리를 찾아나가는 외교를 해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존폐 기로에 있는 한일남부대륙붕 '제7광구'에 대한 협정 유지 여부에 대한 협상이 39년 만에 재개되었다. 1978년 발효된 한일남부대륙붕 공동개발협정(JDZ)은 내년 6월부터 연장 또는 폐지될 수 있다.

제7광구는 석유 매립 가능성 때문에 주목받아 왔는데, 최근 중국도 이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JDZ 연장 협상이 결렬되면 한·중·일 3국의 자원 전쟁이 이곳에서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협정을 연장하면서 한일 간 내부 협상을 통하여 이 문제를 지혜롭게 다룰 수 있도록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집부 weekl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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