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재봉 칼럼] 트럼프는 보수주의자인가?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2024년 미국 대선을 보고 있으면 '보수주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특히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의 정책들을 보면 그렇다.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미국의 보수주의란 사회적 보수주의, 강력한 대외정책, 경제적 보수주의의 세 기둥이 떠받치고 있었다.

사회적 보수주의란 오래된 제도와 관행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 기존의 제도와 관행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어렵게 만들어진 것인 만큼 소중하지만 또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진보주의자들이 기존의 제도는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불평등 구조라고 여기고 따라서 개혁과 혁명을 통해서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들로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보수주의자들은 안정된 제도와 관행을 창출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알기에 기존의 것들을 말 그대로 '보수'하고자 한다. 종교와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낙태를 반대한 것도 전형적인 사회적 보수주의의 모습이다.

강력한 대외정책 역시 미국 보수주의의 특징이었다. 레이건은 강력한 반공주의를 앞세우며 미국이 자유 진영의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 우방국들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공산 진영과 맞섰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등 '독재자'들이 중동의 지역 질서를 위협하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군사 개입을 서슴지 않았다. 한미동맹, 미일동맹, 나토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도 공화당의 보수주의자들이었다.

경제적 보수주의란 개인의 선택을 통한 시장의 자율적인 작동보다 효율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기제는 없다는 신념이다. 정부가 개인이나 가족,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이념이었다. 정부, 특히 연방정부는 작을수록 좋고 주, 기업, 가족,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로 존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레이건은 물론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경제 멘토였던 밀턴 프리드만의 명저 '선택할 자유'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정부의 개입 없이 개인들의 선택이 시장을 통해서 존중될 때 비로소 개인의 자유도 지킬 수 있고 국부도 창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트럼프는 미국 전통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우선 포퓰리스트다. 포퓰리스트란 엘리트들과 기존의 제도들에 대한 깊은 불신에서 출발한다. 엘리트들이 공익을 창출하고 지키기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기존의 제도와 관행들을 모두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선거 결과에 대한 겸허한 수용,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 등을 모두 무시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강력한 고립주의 외교정책 노선을 채택했다. '미국 우선' 정책을 내걸고 동맹국과 우방들과의 안보 협력에 비판적일 뿐만 아니라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미국은 국내 문제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공화당이 세금 감면, 규제 완화 같은 문제에 집중한 반면, 트럼프는 경제적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무역정책에 있어서도 트럼프는 전통적인 미국의 보수주의자들과 공화당원들이 지지하는 자유무역 협정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무역에 대해 보호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은 중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 파격적인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 전쟁을 이어 나갔다.

트럼프는 이민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국경 장벽 건설을 추진하고 이민을 엄격하게 제한할 것을 공언한다. '이민의 나라'인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보다 온건한 이민정책을 채택해 오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수사와 스타일에 있어서도 트럼프는 과거의 보수주의자들과 전혀 다르다. 미국의 역대 공화당 대통령들이 점잖은 어법과 전통 예절을 중시한 것에 비하여 트럼프는 직설적이고 대립적인 언사가 장기다. 상대방의 인격과 인종, 성별, 계층, 종교, 지역 등을 존중하면서 세심하게 접근하는 대신 직설적으로 포퓰리스트다운 인종 차별, 성차별, 계층 차별, 종교 차별, 지역 차별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

미국 정치 분석가들에 따르면 미국의 공화당은 이제 완전히 트럼프의 당이 되었다. 따라서 전통적인 보수주의의 모습은 트럼프의 공화당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이 트럼프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대신 반엘리트주의자들,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분자들이 미국의 공화당을 잠식하고 있다.

이번에 트럼프가 또 당선된다면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은 공화당을 떠나 새로운 당을 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정치가 기로에 서 있다. 2024 미국 대선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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