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한국교총이 발표한 '학생 문해력 실태 인식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곰탕'을 동물 곰으로 만드는 음식인 줄 알고, 세로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이냐고 묻는다. '족보'를 족발 보쌈 세트로 알고 '이부자리'를 별자리의 하나로 생각한다. 금년 8월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발표한 '성인 문해능력 조사'에서도 국내 성인 중 231만명이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문해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중·고 사교육 실태도 심각하다. 2015년 17조8천300억원 이었던 사교육비는 2023년 27조1천100억원으로 급증했다. 의대를 비롯한 대입 경쟁은 식을 줄 모르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휴학과 재수, 반수 열풍으로 캠퍼스는 어수선하기만 하다.
헌법 제31조 제4항이 규정한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고 주민참여를 통해 교육자치를 실현한다는 취지로 2006년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지 18년이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 사교육 광풍과 공교육 붕괴의 현실은 무엇을 위한 교육감 직선제인지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교육의 중립성을 위해 정당 공천을 받지 않도록 했지만 교육감 선거가 보수 대 진보 대결 구도가 된 지 오래다.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어야 할 교육정책은 심화된 '교육의 정치화'로 학생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 전체가 방향을 잃고 표류하게 만들었다. 학생인권 조례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고 교권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교육감 직선제의 가장 큰 문제는 부패와 비리의 위험성이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은 80조원이 넘는 지방교육재정으로 학생 600만명과 교사 50만명이 속한 학교 2만여 개의 운영을 책임진다. 서울시교육청 예산 11조1천600억원은 서울시 예산 45조7천400억원의 4분의1 규모다.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고 인사권을 행사하는 교육감이지만 정당 공천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후보자가 선거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집계한 2022년 교육감 선거 후보자 61명의 선거비용은 660억원이다. 후보 한 사람당 평균 10억원 이상을 썼다. 선거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신세 진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중도 사퇴 후보에게 2억원을 건낸 후보매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불필요한 교육재정의 지출도 우려스럽다. 직선제 이후 역대 교육감들은 7천300여 건의 각종 소송에 휘말리며 300억원이 넘는 교육예산을 비용으로 지출했다. 경기도·서울시교육청이 쓴 소송비용만 각각 134억원과 45억원이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의 자율형 사립고 폐지 공약처럼 포퓰리즘과 이념적 정책 남발, 각종 소송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된 결과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시대에 교육의 의미는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가치 창출의 원천이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를 만들어내는 능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의미를 창출하는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존의 관성이 힘을 쓰지 못하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격차가 커진다. 수능 '킬러 문항' 논란이 있었지만 대학 졸업장이 '등록금 완납 영수증'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을 위해 길을 내줄 게 아니라 길을 갈 수 있게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신과 관계없어 보이는 비참함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고, 동료들이 거둔 승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이다. 자신의 돌을 하나 올려놓으면서 세상을 건설하는데 힘을 보탠다고 느끼는 것이다"고 썼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도 바로 이것이다.
다음주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비용 565억원은 전액 교육예산에서 지출된다. 거리에 나붙은 '아빠! 교육감은 조전혁이지?!','뉴라이트, 친일교육 심판' 현수막을 보며 교육감 직선제는 우리에게 무엇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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