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이별(離別)의 품격(品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새삼 화두(話頭)로 떠올랐다. 최근 TV 드라마 '굿파트너'가 상당한 시청률를 기록하며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혼을 콘텐츠로 삼은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도 적잖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는 '세기의 이혼'으로 불리는 SK그룹 재벌가의 이혼소송이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뉴스로 등장한 것도 그렇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이혼을 자랑삼을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이상 터부시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이혼은 경우에 따라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만큼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드라마 '굿파트너'가 인기를 누린 배경이다. 그리고 다시금 '이별' 에 대한 성찰이 이뤄질 때가 되었다는 사회적 인식이 출렁인다. 하물며 살인으로까지 치닫는 '교제폭력'의 빈발은 우리 사회의 품격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랑하는 님을 보내는 아쉬운 마음이 정(情)이라면, 떠나는 님을 원망하는 서러운 마음은 한(恨)이다. 만해 한용운은 '정천한해'(情天恨海)라는 시에서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情) 하늘을 따를쏘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恨) 바다만 못하리라.... 정(情) 하늘이 높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한(恨) 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도 얕다'고 했다.
이별의 정한에 관한 문학적 계보도 유구하다. 고조선 시대 뱃사공의 아내가 지었다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와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는 임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서정을 한시(漢詩)로 기록한 최고작(最古作)이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는 선하면 아니 올세라, 설운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고려가요 '가시리'와 '서경별곡'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전통적‧보편적 이별의 정한은 조선시대 명기(名妓)들의 시조문학으로 계승되었다. '있으라 하면 가랴마는 제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황진이의 시조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뒤돌아서서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렸다. 그러면서 여인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 이별의 품격이다.
이별의 서정성은 김소월과 한용운의 현대시에 이르러 미학적인 최고의 경지를 구현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진달래꽃).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님의 침묵). 님은 갔지만 님을 보내지 않았고, 님을 보내지만 울지도 않으리라는 반어미학(反語美學)과 역설의 문학성은 순화되고 정제된 인간 정신성의 극치를 이룬다.
한국인의 심성에 체질화된 이별의 정한은 가곡과 가요를 통해서도 표출된다. '잊으라면 잊지요, 그 까짓것 못 잊을까봐' 조용필의 노래 '미워 미워 미워'는 '가시리'와 '진달래꽃'의 변주이다.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역설적 토로이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이별의 정서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이다. 아파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한의 민요 '아리랑'을 잉태한 겨레의 성숙한 문화적 토양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유난히 내우외환이 잦았다. 거의 모든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반복된 전란(戰亂)과 실정(失政)이 초래한 비극적 이별의 아픔은 겨레의 가슴에 한(恨)을 쌓고 또 쌓았다. 그렇게 축적된 한은 이별의 통증을 수용하고 중화시키는 효소 역할을 했다. 이별을 경험할 때마다 면역과 같은 인고와 체념의 결정체가 심신에 거듭 내장되어 아픔을 삭이는 정한(情恨)이 체질화 된 것이다.
그것은 판소리와 대금의 처연한 산조 가락으로, 더러는 트로트의 구성진 꺾기 성음으로도 표출되는 것이다. 이별의 설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을 삭이지 못하면 진정한 한국인이 아니다. 천박한 세대의 반영인가. 정조와 지조의 개념을 헌신짝 취급하고, 왜곡된 사랑의 행각이 잔혹한 데이트 폭력으로 표출되는 사례를 보며, 땅바닥에 떨어진 사랑과 이별의 고귀한 정한을 떠올려본다.
겉으로 화려한 사랑보다 안으로 성숙한 이별이 더 어려운 법이다. 품격있는 이별은 고매한 인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천격(賤格)의 만남에서 귀격(貴格)의 이별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가방과 옷 그리고 아파트는 명품을 추구하면서, 사랑과 이별의 감성은 왜 싸구려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애초에 이성적 성찰이 없는 감정적 충동으로 벌인 사랑에 무슨 승화된 이별의 정한이 있겠는가.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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