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대의 창] ‘대통령제’ 그 수명을 다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황태순 정치평론가
황태순 정치평론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고민에 빠졌다. 민주공화국을 세우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고민은 권력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이냐였다. 이승만 박사는 대통령제를 고집했고 한민당 세력들은 의원내각제를 선호했다. 결국 두 세력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적당히 버무린 '기형적' 대통령제로 합의를 봤다. 그렇게 출발한 대통령제가 이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교과서적으로 대통령제는 임기 중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각제는 보다 더 민주적 제도이나 잦은 정부의 교체로 정국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교과서적인 이야기다. 대한민국 76년 헌정사의 경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최근 모두가 경험한 바와 같이, 대통령제가 '여소야대'를 만나면 최악의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나라를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야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지만 불행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건국 초기 나라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서, 또 절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고도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일정 부분 '독재적 성격'의 대통령제가 용인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의식도 몰라보게 달라져 갔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1987년 9차 개헌을 통해 정해졌고, 오늘날까지 36년째 '제6공화국' 권력구조로 작동 중이다. 과거 장기집권에 대한 반성과 직선제에 대한 열망으로 만들어졌다. 13대 노태우 대통령 이후 현 20대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여덟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 모두 퇴임 후 뒤끝이 좋지 않았고, 재임 중에도 각종 게이트 등으로 곤욕을 치렀던 것이 현실이다.

우선 5년 단임은 대통령으로서 제대로 국정을 운영하기엔 너무 짧다. 말이 5년이지 취임 초 1년은 세팅한다고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퇴임 1년을 앞두고는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야 한다. 정작 힘을 써볼 기간은 3년 남짓이며 그나마 중간에 큰 선거라도 있게 되면 국정에 집중하기 어렵다. 어떻게 잡은 권력인데 눈 깜빡할 사이에 권력의 칼자루를 놓아야 하다니.

권력은 요물과도 같다. 아무리 평정심을 지키려 해도 결국 권력의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권력 주위를 맴도는 불나방들은 더욱 기승이다. 그러니 역대 정권 중반만 되면 각종 게이트가 터지기 시작했고, 결국 현직 대통령 아들들이 줄줄이 교도소에 가는 일이 벌어졌다. 퇴임 후에는 재임 중의 일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사법처리 되는 일도 벌어졌다.

더 큰 문제는 여소야대가 되면 대통령은 말 그대로 '식물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최초로 여소야대가 발생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을 통해 극복했다. 2016년에 또 여소야대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탄핵소추되고 탄핵되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2024년 사상 최악의 여소야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대통령제는 원래 '전부 아니면 전무' 구조다. 그런데 여소야대 아래에서는 그게 아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렇다고 거대 야당이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전무하다시피 하다. 대통령제의 극단적 모순이다. 결국 국정은 계속 공회전하는 가운데 그냥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과 국민의 몫이다.

근본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권력구조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각 정파의 유·불리 계산 속에 말만 무성할 뿐이었다. 대통령과 야당 모두 단 한 발짝도 꼼짝할 수 없는 교착상태의 지금이 개헌의 적기일 수 있다. 의원내각제에서는 다수당이 행정권을 행사하고 또 국민의 신임을 잃으면 언제든지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꿀 수 있기에 보다 더 선진적이고 민주적 제도일 수 있다.

내년 2025년은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는 해다. 내년에 여야가 한 발짝씩 물러나 합의한다면 개헌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2026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와 23대 국회의원선거를 함께 치른다면 '제7공화국' 출범을 이룰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은 임기의 10개월을, 현 22대 국회의원은 1년 10개월의 임기를 양보해야 하는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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