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로 불리는 개발제한구역이 지정된 지 반세기가 넘었다. 대도시권의 무분별한 팽창을 막고 녹지공간을 확보하고자 도입된 그린벨트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확장된 도시와 추가 개발 수요 때문이다. 대구권의 경우 그동안 불균형한 도시팽창과 녹지 축 훼손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최근 정부가 추가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그린벨트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 개발 방향을 살펴본다.
◆그린벨트 갇힌 도시의 '불량 팽창'
지난 2일 오전 11시쯤 공공기관 건물들 사이로 풀만 무성한 빈 공터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일부는 주말이면 인근 예식장의 임시 주차장으로 활용되거나 방치된 수준이다. 이곳은 그린벨트를 해제(326만414㎡)하고 2013년 들어선 대구 동구 대구혁신도시다.
방사형인 다른 지역 혁신도시와 달리 동서로 길게 늘어선 모양새다. 동쪽은 공공기관들이 이전했고, 서쪽은 주택지역으로 조성됐다. 그 사이를 산악 지형이 가로막고 있다. 또 남쪽은 경부고속도로가 있어 기존 도심과 분리된 형태로, 공간 이용의 비효율성이 발생하고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사업 유치를 위해 외부 손님을 초청할 때 장애물이 많다. 동대구역에서 멀리 떨어졌고 대구 도심으로 나가기도 불편하다"며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이 안 들어오니 활기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애초 2005년 혁신도시 공공기관 후보지로 수성구 연호·대흥동 일대가 검토됐다. 하지만 부지를 관통하는 그린벨트가 발목을 잡으면서 현재 동구 신서동 일대가 선정됐다. 수성구 그린벨트를 피해 동구 그린벨트를 해제한 것이다.
이처럼 도시개발 수요에 따라 해제돼 온 그린벨트는 1971년 박정희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1977년까지 1~3차에 걸쳐 전국 14개 도시권 5천397㎢ 부지가 그린벨트로 묶였다. 경북 칠곡·경산·고령을 포함한 대구권 그린벨트는 537㎢(축구장 7만5천210개 크기)에 걸쳐 1972년 8월 지정됐다.
녹지 공간 확보 등의 성과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부작용도 명확했다. 도시 성장 관리의 한계와 경직된 구역 운영으로 개발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린벨트를 넘어 도시가 기형적으로 팽창하는 형태를 낳았다.
대구시에 따르면, 2005년 달성군 옥포지구와 이듬해 수성구 시지와 경산 등 그린벨트 밖으로 도시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어 2006년 달성군 다사읍 성서5차산단, 북구 도남지구와 달서구 대곡2지구 택지 개발 등 추가 확장이 이뤄졌다.
도시가 커지면서 그린벨트가 오히려 도심과의 연결을 단절시켰다. 도시철도 1호선 종점이 달서구 대곡역에서 2019년 달성군 설화명곡역으로 연장됐지만, 개발이 이뤄진 달성군 옥포·현풍까지는 여전히 닿지 않는다. 그린벨트 밖인 수성구 신매지구도 도심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곽 개발 사례다.
그린벨트의 경계 조정이 유연하게 이뤄지지 않아 도시 성장을 크게 저해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구는 달성군과 수성구 등 동서 양쪽으로 확장된 반면, 남북으로는 앞산과 팔공산 등에 가로막혀 있다.
국토연구원은 "그린벨트를 우회한 도시 팽창으로 인해 도로와 대중교통 등 교통인프라 투자 비용이 늘고 통행시간 증가 등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중은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정비연구센터장은 "그린벨트의 지정 목적은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고 자연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맞춰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개발과 보존의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누더기 된 녹지 축
그린벨트의 녹지 축이 무너지고 있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무분별한 도시 확산 방지를 위해 일정 폭의 그린벨트 형태 유지가 필요하지만, 곳곳이 해제돼 녹지 폭이 줄어든 지역이 발생했다.
대구권 그린벨트 동쪽 축의 경우 동구 혁신도시와 율하지구를 비롯해 수성구 신매지구와 연호지구, 대구대공원, 야구장(삼성라이온즈파크) 등을 개발했다. 이로 인해 연호산과 천을산, 제2작전사령부와 제5군수지원사령부 등 군부대, 금호강 등을 제외하면 녹지 공간이 단절될 상황에 놓였다.
북구 역시 도남지구 개발이 진행 중이다. 특히 북구 동‧서변동과 동구 지묘동 사이 연경지구 개발로 녹지 축이 좁아졌다. 달성군은 옥포지구 개발로 화원과 이어지는 녹지가 축소됐다.
일부 그린벨트는 녹지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비닐하우스 등 농경지를 비롯해 군부대들도 녹지 공간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린벨트 중 경북 고령군과 대구의 달성군·수성구(고산3동) 등은 경작지가 분포돼 있다.
김재현 건국대 산림조경학과 교수는 "그린벨트 내부는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거지 근처에 있어 훼손되거나 방치된 곳이 많다"며 "생태적인 측면에서 이용이 가능한 건축물을 짓거나 용도 변경을 통해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합리적인 관리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으로 가는 아파트
그린벨트 개발이 아파트 등 주거공간 개발에 치우쳐 있고, 또 도시 경계부의 경관을 훼손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대구권 그린벨트의 경우 율하·옥포·연경·도남지구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연경·도남지구는 산지를 끼고 고층 아파트가 우뚝 솟은 모습으로 개발돼 있다. 이로 인해 도시 경계 경관(스카이라인)이 훼손되고, 보존 가치가 높은 녹지가 줄어든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개인 재산권 침해도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재원 부족과 낮은 가격으로 토지 매수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재산권 행사 제약 등에 주민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수성구 고산동 그린벨트 내 1만 평 정도 토지를 소유한 A씨(60대)는 "그린벨트의 재산권 침해가 인정된 지가 거의 3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땅인데도 아무 행위를 할 수가 없다. 세금만 떼이고 있다. 국가가 수용하던지 활용할 방안을 제시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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