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이시바 총리, 나머지 빈잔 채울까?”

홍진옥 전 인제대 교수

홍진옥 전 인제대 교수
홍진옥 전 인제대 교수

일본의 새 총리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자민당 내 강경 보수 인사들과 달리 온건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 그는 한국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일본)가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직시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에 있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대일 관계 개선을 바라는 정부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일본 자민당 내 강경 보수파들과 달리 어떤 차별화된 조치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본은 윤석열 정부의 양보 외교에도 여전히 빈 잔을 채우지 않고 있다. 첫째, 제3자 변제 방안에 대해 위자료를 받아야 하는 원고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는 대신 한국 기업이 보상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파격적인 양보에도 일본의 정부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이 거부하는 이유는 1965년 한일 협정 청구서에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65년도 한일 협정 청구서에 적힌 피해 배상은 한국과 일본 정부 간의 배상이지 강제 노역에 동원된 피해자와 일본 기업 간의 보상 문제가 포함돼 있지 않으므로, 일본 정부가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둘째, 제3자 변제를 거부하는 이들은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강제징용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 정부가 동의할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 근성이 있는 한 한국 식민 지배 정당화와 침략 야욕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 예로 일본 정부는 일본 자위대의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있고, 이시바 총리 역시 방위력 강화 주장을 해왔으므로 헌법에 명기하는 개헌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주변국과의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포기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한국 피해자 위로금 지급이 해결된다고 해서 한일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피해자인 한국인의 아픈 기억과 가해자 일본의 책임을 위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과거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 각료들의 야스쿠니 산사 참배를 여전히 강행하는 것은 피해자의 아픈 기억만 상기시켜 주고, 일본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기록해 여전히 일본의 침략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왜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사도광산 합의를 수정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는가? 정부는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 박물관 전시실에 한국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 설치, 한국인 노동자 추도식 등의 후속 조치 이행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조치가 미흡하다면 바로잡으라고 일본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해야 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정신이 책임 정신이며, 대통령이 해야 할 역사적 소임이다.

퍼주기식 일본 굴종 외교는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시켜 주므로 재고해야 한다. 가령 '제3자 변제 방안'이나 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는 일본의 잘못에 대해 침묵하고 용인해 주는 역효과만 초래했다.

이제 이시바 총리가 빈 잔을 채우기를 기다리지 말고, 일본 정부에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는 합리적이고 당당한 실용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업보는 피해국의 굴욕 외교로 해결될 것이 아니라 가해국 일본의 사죄하는 태도와 약속을 지키는 역지사지 정신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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