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진 작, 연출의 <상자들의 지평선>(신촌극장) 공연은 작품에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하고 있는 전지니 평론가 권유로 관람한 지 시간이 지났는데도 무대와 희곡이 내재하고 있는 잔상(殘像)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대의 연극적인 미학성보다 이여진이 근현대 희곡을 통해 파고들고 있는 분단, 전쟁, 통일, 국가와 이데올로기, 여성과 모성애, 시대의 젠더성에서 포착되는 극중인물 캐릭터들과 퍼포모들이 근현대 세 편의 극의 맥락에서 분석되는 과정들이 그랬다. 이여진은 어머니와 모성애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지난해는 '분단 희곡'에 나타난 모성의 양상 연구를 <모자>, <동거인>, <하늘만큼 먼나라> 의 모자(母子) 관계를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이여진은 논문에서 " 작품에서 분단 체제에 관한 소재와 어머니라는 존재가 심도 있게 그려진다면, 극 중 모성이라는 개념은 사라지지 않고 여성을 끊임없이 추적하며 억압하는 사회적 발명품으로 드러나게 됨을 파악할 수 있도록 의미를 갖는다."라고 밝히고 있다. <상자들의 지평선>은 연구논문을 무대로 수행하는 연장에 있다.
분단 희곡에 나타난 '경계지대'의 여성인물 연구로 박사(서강대학교, 2021)학위를 받은 이여진은 그동안 <평행우주 없이 사는 법>,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 <토일릿피플> 등으로 특정한 소재나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개인의 실존과 대사회적 이슈를 논의해 온 극작가(전지니, 드라마투르그)의 작품인 <상자들의 지평선>(작, 연출 이여진, 신촌극장)은 연출 데뷔무대이다. <상자들의 지평선>은 1958년부터 1988년까지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88올림픽으로 이어지는 한국사회 에서 포착되는 여성과 남성의 지배성, 반공과 이데올로기, 북풍과 정치, 시대와 젠더성 등 희곡에 내재한 현상들을 <모자>(이용찬, 1958>, <동거인>(김자림, 1969), <통일밥>(주인석,1988) 세 편의 희곡을 통해 배우들이 워크숍을 하며 작품을 분석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무대는 희곡 분석워크숍'을 강의를 들으며 특정 장면에서 실현해 보거나, 시대의 캐릭터로 역활 수행하기 위해 토론과 자기적 설득을 해나가는 실재 워크숍처럼 희곡을 분석하고 인물 캐릭터를 연구하는 과정 그대로 무대화했다. 렉쳐 퍼포먼스처럼 무대와 스크린을 활용하기도 하고, 희곡의 시대 배경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들을 모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삽입해 전달하는 표현 방식도 취하고 있다.
◇분단의 한국전쟁부터 일론머크스까지 '한국 사회의 어머니'와 마더링
이여진의 <상자들의 지평선>은 분단 한국전쟁 이후부터 일론 머스크가 민간 우주 기업을 만들어 달착륙과 우주 산책이 한 발 앞으로 가능해지고, 드론이 골목 상공을 일상처럼 날고 있는 현시대 한국 사회의 모성과 마더링(mothering)의 변화, 젠더, 분단과 전쟁, 반공의 정치적 프레임들이 작동된 근현대 시대의 국가와 배우들이 희곡을 탐구하는 현시대 변화에 주목하면서도 반세기 간극에는 시차의 달라짐이 없음을 보여준다. 이여진의 '상자'들은 세 편의 희곡에 내재한 문제의식(국가, 여성, 반공, 정치, 이념, 분단, 젠더)들이 한국 사회가 역동적으로 달려온 시간만큼 완전한 자유민주주와 와 젠더 평등의 지평선이 될 수 없는 기울어진 상태로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여진의 '상자'는 국가이며, 분단의 한국전쟁을 거치며, 민주화와 산업화 시대를 달려오면서도 자유대한민국의 상자 밖을 나올 수 없는 이용찬, 김자림, 주인석 시대에 멈쳐서 있는 것이다.
신촌극장의 공간을 특정 시간과 시대의 프레임처럼 감각적으로 시각화시키면서도 배우들의 연기는 감정이입을 통한 인물화의 방식보다는 탈 인물로 희곡을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간과 연기와 역할의 방식을 포스트 드라마 형식을 보인다. 배우들은 특정한 인물을 연기하는 방식보다는 탈 인물화로 수행하는 퍼포머로 등장한다. 때로는 상자 안에서 시대적 배경을 소환하는 소품들을 꺼내 시간을 특정하고 있으면서도 세 명의 배우(권주영, 김수안, 이종민)는 희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거나 거리 두기를 하면서 진행된다. 배우들은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아닌 수행 과정에서 인물로 연기가 될 수 없는 '나'(현재)와 '너'(시대)의 부조화로 인한 문제 제기로 시작된다. <상자들의 지평선> 배우들은 캐릭터를 드러내기, 감정으로 인물화 되기보다 희곡과 근현대 인물의 캐릭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의 수행을 그대로 무대화하고 있다. 희곡 분석과 연기워크숍 과정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처처럼. 표현 방식은 다큐적인 실제이면서도 연극적인 허구성의 경계에 있으나 관객들은 1958년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의 시간까지 한국 사회에서 발화된 근현대사의 외적 이슈를 연극적 방식으로 강의를 듣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세 편 희곡의 워크숍 구조에는 연출이 존재하지 않고 무대 밖에서 배우들과 실시간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것처럼 자막으로 설정해 희곡을 이해하고 퍼포머들이 작품과 인물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정 사건들과 한국 사회 이슈들을 얘기하기도 하고 자기 고백과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희곡 낭독이나 연극 워크숍을 준비하는 과정과 동일하면서도 세 편의 희곡으로는 시대 배경과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작가적 설정을 이해할 수 없는 시대적 모순과 차이의 오류로 극 중 인물은 타자화되어 무대 실현의 정상적인 워크숍이 불가능해진다. 희곡은 시대의 부조화로 인해 작가적 논리의 맥락과 인물 설정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극 중 캐릭터(여성과 어머니의 모성, 군인, 젠더, 특정 인물)로 연기할 수 없는 분단과 특정 이념으로 정형화되거나 반공(反共) 이데올로기로 갈라치게 된 시대인 것이다.
◇ 근현대 인물 캐릭터 '연기하기의 부조화와' 역사 인식.
무대는 특별한 것이 없다. 공간은 희곡을 탐구하는 워크숍처럼 담백하다. 신촌 도심 전경이 보이는 출입구를 열어 활용하기도 하고 관객은 무대를 바라볼 때 삼각형 구도로 보이게 된다. 공간 뒤편으로 상자들이 놓여 있고, 그 사이에 배우들이 진행할 수 있는 의자가 있다. 상자 사이 벽면은 스크린으로 활용된다. 연출과 배우들의 토론들이 자막처럼 진행되기도 한다. 무대에는 드론 한 대가 놓여 있는데 배우 B(김수안)는 일론 머스크가 화성으로 발사한 슈퍼헤비급 로켓을 이야기한다. 아들이 그 장면을 보고 산타한테 로켓을 달라고 기도해 대신 드론을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놔둔 얘기를 하며 무대와 연결된 외부 상공으로 직접 날리기도 하면서 드론은 극장 안과 밖으로 연결된다. 이여진은 인트로 장면에서 드론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드론은 분단 한국전쟁 이후 우주 비행의 미래 시대를 개발하고 있는 세계환경에서 한국 사회의 현재 시간을 관통하면서도 세 편의 희곡 속 사회(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 분단과 전쟁)와 구조(사회제도), 인물의 역할(여성과 어머니, 남성과 가부장제)들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드러내 보인다.
첫 번째로 다루고 있는 희곡은 1958년에 단막극으로 발표된 이용찬의 「모자」(帽子)이다. 극의 중심인물들은 한국전쟁 중 남편이 납치된 전쟁 과부 혜원, 상이군인 진수, 혜원을 좋아하는 40대 사업가 기영, 혜원의 친구 옥주, 파나마모자를 아버지로 동일시하며 기다리는 아들 종우와 파나마 모자가 중요한 오브제로 등장한다. 남편이 삼팔선을 넘어 돌아올 것만 같다면서도 사업가 기영한테 마음이 돌아서고 있는 혜원은 파나마모자를 기영한테 준다. 극의 중심은 아들을 홀로 키우며 남편을 기다리는 전쟁 과부 혜원의 심리적 변화성으로 이여진은 종우와 혜원의 모자 관계에 주목한다. 종우는 아버지가 안 오시면 어른 되어서 파나마모자를 쓴다고 말하는데 이 장면에서 배우는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타격하며 '왕이 되실 분'으로 조롱 된다. 파나마모자는 남성, 권위, 가부장제의 오브제 기호로 감각되는 아들 종우한테 대물림되는 시대이면서도 여성(어머니)은 양육에 대한 본능적인 역할에 대한 억압으로 모성(母性)이 강요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주목한다.
모성과 여성(어머니), 마더링의 역할은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의 사회적 구조에서는 드론이 골목의 상공을 오르고, 일론 머스크의 우주여행 시대가 임박함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는 완전한 여성해방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여진은 종우가 말한 남성 민족주의 시대에 나타난 전쟁, 이데올로기, 분단, 정치의 현상들이 국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되었는지 극이 진행되는 외적 사건들을 통해 들여다본다. 1958년 KNA 여객기 납치와 납북사건, 북풍 공작, 자유당의 대북정책과 반공 정책 등의 대표적인 사례들을 렉쳐퍼포먼스 방식으로 전달되는데, 분단 한국전쟁 이후 남성의 시대에는 국가를 위한 반공 애국청년을 강요하고 여성에게는 아들과 장자 중심의 사회에서 남편을 위한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이러한 작가적인 물음과 시대적 인식은 배우들의 '연기하기'의 부조화 방식으로 나타난다. 배우들 연기는 주어진 역할과 캐릭터로 '나'에서 '너'라는 인물로 동일화되기 위한 감정이입의 표현 방식보다 거리 두기를 취한다. 감정이입은 희곡 속에 내재한 캐릭터(인물), 극적 갈등, 사건, 인물의 대립, 삶과 극적 전개, 전사(前史), 작가적 설정들이 자기 인식에서 설득 과정을 거쳐 인지되어 극의 역할자로 언어와 감정의 감각으로 나타나는데 희곡 모자 워크숍을 준비하는 배우들은 이용찬의 작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정당성, 극의 논리와 모순, 설정과 인물관계, 극의 외적인 시간 사건의 부조화로 배우들은 근현대 시대의 캐릭터를 연기할 수 없게 된다. 이용찬의 모자는 국가와 시대의 모순적인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이데올로기가 구조화된 사회라는 것이다. 이여진은 두 번째 희곡은 휴전 후 17년 뒤의 김자림 「동거인」(1969)을 통해 모성이 반공 이데올로기로 전환되는 시대의 변화를 한 발짝 당겨서 들여다본다.
◇ 1969의 김자림의 <동거인>, 1988도 주인석의 <통일밥>
무대는 스크린으로 극작가 김자림의 사진도 등장하고, 퍼포머 들은 김자림 희곡의 특징도 설명하면서 "모성이나 젠더를 그리는 방식이 전보단 나아졌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낸다. <동거인>은 전시 중 실종됐다가 돌아온 남파간첩 한백호와 어머니 민부인, 향아. 백호 아버지 한 사장이 중심인물이다. 한백호는 6,25전쟁 때 4살 무렵 실종되었다가 19년 만에 월남한 가족들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A, B, C 퍼포머가 극을 수행하면서 관심이 있는 것은 '백호가 어떤 아들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표면으로는 아들을 기다리던 민부인과 이산(離散)의 모성애를 다루는 듯하지만 김자림의 <동거인>은 국가 이데올로기가 어머니 캐릭터를 통해 반공이데올로기로 주입되고 있는 극의 맥락과 논리의 모순을 분석한다.
<동거인>의 극적 설정의 맥락을 살펴보자. 백호는 꿩과 토끼를 잡는 사냥총을 인간을 죽이는 전쟁 도구로, 사랑은 욕망의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는 백호를 중심으로 폭력적으로 그려진다. 주변 인물들은 백호의 투철한 이데올로기를 교화(敎化)시키려 하고 민 부인은 백호를 향아와 결혼시킴으로써 사랑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이여진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유신 시대까지 간첩, 빨갱이, 짐승, 괴물, 야만 사회라는 인식적 국가 반공 이데올로기가 젠더 캐릭터로 어떻게 작동되었는지를 드러내 보이는데, 극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의 외적 사건(근현대 산업화 프로젝트, 김신조 사건)과 1960년대 국가, 민족, 반공을 강조하는 작가의 작품이 국가 지원을 받고 우수작품으로 평가받는 상황들을 해설로 삽입한다. 이여진은 마지막 장면에서 교화된 백호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장면으로 <동거인>의 에필로그 장면을 마무리하면서 1960년대 김자림 <동거인>에 나타난 어머니상과 모성애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작동되었음을 간접화하고 있다.
이여진은 <동거인>과 주인석 <통일밥> 사이에 퍼포머 C (이종민)와 실제 엄마가 C의 집에서 김치죽을 만들며 대화하는 모크 영상을 삽입한다. 77년 스물한 두 살 시절 미용 사원으로 살아온 얘기, 사람은 좋은데 경제적인 책임이 없던 남편 이야기, 아들에게 김치죽을 끓여주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꺼내면서 70년대 남편과 가족, 아들에게 헌신하며 살아온 장면으로 전환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모성'은 주체적인 욕망으로의 삶보다는 가족, 아들, 남편에게 헌신하며 살아야 하는 억압된 '여성'으로 60년대 김자림 동거인에 나타난 민 부인의 여성상(어머니와 모성애)과 다름이 없음을 보여준다. 서울 88 올림픽 시절 발표된 주인석의 <통일밥>은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작가 주인석은 이 희곡을 통해 통일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 분단의 이데올로기와 마더링
통일밥에 등장하는 극 중 인물 장시우는 노동자다. 해방정국 혼란의 이념 속에 그는 노동자 권리를 위해 파업을 주도하고 노동자들을 국가가 억압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된다. 해방이는 대남 홍수구호 물품으로 온 북한 쌀을 집에 가져가고 쌀을 보고 남편이 돌아온 듯 어머니는 기뻐하게 된다. 동민이는 고시에 실패하고, 작은아들은 노조 파업을 주도하는 인물이 된다. 조모는 동석을 위해 북한에서 가져온 쌀로 밥을 지어 파업 투쟁 중인 손자 동석에게 가져가며 분단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국가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군부와 미국을 비난한다. 대남 홍수구호 물품으로 북에서 온 쌀로 지은 조모의 밥은 투쟁과 파업으로 80년대 친미주의와 반공정신이 투철한 군부정권의 폭력성과 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면서 동석을 위한 조모의 밥은 통일밥이 될 수 없는 분단의 비극성과 자주적 통일을 할 수 없는 시대의 정치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이여진 작, 연출이 주인석의 <통일밥>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분단과 반공이데올로기에서의 여성(어머니)의 캐릭터다.
90년대를 진입하고 있는 서울 88 올림픽의 시대에도 여성과 어머니, 모성은 한국 사회 가족과 시대의 구조에서 대를 이어 도구화(배우 C)가 되기 때문에 결국 퍼포머들은 작가의 젠더 캐릭터와 인물, 극적인 맥락의 비논리성으로 연기하기의 감정이입은 부조화가 될 수밖에 없기에 배우의 '나'에서 캐릭터로 존재 하는 '너'가 될 수 없는 현재인 것이다. 그런 만큼 이여진이 바라보는 현시대에서 배우들은 인물의 캐릭터로 연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우주정거장을 개발하고 드론이 골목을 상공을 나르는 시대임에도 한국 사회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70~80년대의 군부정권과 산업화를 거쳐 경제 강국이 되었음에도 퍼모머 세 명이 모두 각각의 어머니가 될 수 없는 현재성을 감각화 시키거나 드론이 신촌의 도심을 마음껏 자유로운 비행 할 수 없게 된다. 한국 사회의 여성과 어머니, 분단과 전쟁, 반공의 정치 이데올로기들은 1958년을 시작으로 1960, 70년대와 80년대 주인석의 통일밥을 거쳐 이여진의 <상자들의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동시대에도 극의 내외적 사건들과 이슈처럼 달라짐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여진의 <상자들의 지평선>은 세 편의 근현대 분단 희곡으로 국가, 여성, 반공, 전쟁, 정치, 이념, 분단, 어머니와 모성, 젠더의 한국 사회 주요 키워드들을 감각화 시켰음에도 아쉬운 것은 희곡의 외적 사건을 결합하고 배우들의 경험을 장면으로 환기해 연결하면서 시대의 어머니와 마더링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부각되지 못한 점이다. 좁혀 말하면 방대한 키워드들이 나열되어 타격 방향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자들의 지평선>은 이여진이 지속해 온 연구가 수행의 방식으로 감각적으로 무대화가 되었다는 점에서 연출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미니 인터뷰(작. 연출 이여진)
"분단 체제와 절합된 모성의 양상과, 젠더문제를 무대화하고 싶었어요." 미니 인터뷰는 작품에서 보여지는 작가나 연출들의 특별한 작업과정 이야기가 연극리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진행해왔다. 이여진 작, 연출의 <상자들의 지평선>이 그랬다.
─ 작, 연출 데뷔작품이다. 작품 준비과정은.
"제가 6개월에 걸쳐서 대본을 집필하고 연습과정에서 배우들의 의견을 반영하며 장면 만들기에 들어갔습니다. 작품을 쓰기 오래전부터 분단 희곡을 통해 바라본 이분법적 패러다임과 작품 구조를 논문 발표와 연구를 통해 선명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본부터 쓰게 됐어요. 연습과정에서 장면의 맥락을 이을 수 있는 디테일한 의견들이 더해졌고, 배우님들의 진정성 있는 삶의 인터뷰도 도움이 됐습니다. 보통 포스트드라마 라고 하면 대본을 공동창작합니다. < 상자들의 지평선>도 혼합장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즉 메타드라마와 렉처퍼포먼스 모큐의 장르를 혼합했다는 점.) 포스트드라마 경향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인 <평행우주 없이 사는 법>,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 <토일릿피플>에서 작가의 메시지는.
"<평생우주 없이 사는 법>과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은 인간의 실존에 관한 화두를 담고 있어요. <토일릿피플>은 분단과 남한의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자의 두 작품은 '인간은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 속에 놓여있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분투해도 삶은 예측불가의 국면을 드러내잖아요. 이러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살핀 것입니다. <토일릿피플>은 탈북난민이 북한 탈출 과정과 남한 정착 과정에서 동아시아 이데올로기의 갈등에 의해 소외되는 과정, 그리고 남한의 경쟁체제에 의해 타자화 되는 과정을 다뤘습니다. 결국, 관통하는 지점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고자 했습니다."
─ 분단 이후 이여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상자'들 속에서 전쟁, 여성, 반공, 군부독재, 북풍 기획 등 정치사의 한 장면이 스쳐 갔다. 대한민국 사회는 분단 희곡에 내재한 것처럼 여전히 지평선이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쟁이 휴전된 지 굉장히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안보체제 속에서 국가에 동원될 수 있는 존재와 그렇지 못한 존재를 이원화하고 위계화하는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다양한 시대의 담론요소들과 결탁되며 공고하게 이 세계의 지평선을 구조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에 동원될 수 있는 민족, 젠더와 세대, 모성 등의 정체성은 각각 단일한 것으로 규정되기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종의 상자(박스)에 담겨 지평선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전쟁으로부터 멀어진 세대들도 그 이전 세대와 그들이 만들어낸 기존 사회구조 속에서 '마더링' 즉 돌봄을 받으며 결국 상자의 지평선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 말한 대로, 모성애의 돌봄을 받으며 상자의 지평선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자연스럽지 못한 시대의 희곡을 구현해야 하는 배우들은 감정 몰입이 안 되고, 캐릭터도 어색할 수밖에 없다. 역사의 오류는 연기하기의 부조화로 나타나고 있는데.
"<상자들의 지평선>에서 인물 A, B, C는 분단 희곡 속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불편해하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대본을 쓸 때, 지금 시대에서 이 작품을 공연화하며 50년대, 60년대, 80년대의 분단 희곡 속 인물들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럼으로써 그 시대를 지배했던 분단의 이분법적 패러다임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따라서 이분법적 경계에 길들어져 있는 인물을 거부하고 부정하며 질문을 던지는 캐릭터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배우들도 희곡의 이러한 화두와 맥락을 파악하며 분단 희곡 속 인물들에 거리 두기를 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한 겁니다."
─ 첫 장면부터 드론이 나온다. 마지막 장면에는 극장 공간과 외부를 연결되는 문을 열고 현재 대한민국을 비행한다. 이여진 연출은 한국 사회를 희망 있게 보는가? 의미는.
"드론을 날린 것은 극장 안에서 공연을 진행하지만, 극장 밖의 동시대성도 인지하겠다는 의도를 갖습니다. 세계가 분단 이후 이분법적 경계라는 지평선에 의해 어떻게 구조화되었는지 우리가 동일적 정체성(상자)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한국사회를 희망적으로 본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과정이 순간일지라도 우리를 구획화하고 있는 지평선을 한걸음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비전의 단초정도는 얻고자 했습니다."
─ 세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분단 희곡 중에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극의 주요한 갈등과 사건이 진행된 것을 작품화하고자 했습니다. 해당하는 것이 <모자> ,<동거인>, <통일밥>이었습니다. 마더링은 시대가 호명하는 정체성에 맞게 자식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문화적, 사회적 산물입니다. 분단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분단체제도 그 모습을 변모시킵니다. 따라서 위 작품이 발표된 50년대, 60년대 그리고 80년대의 분단 체제의 변모 과정과 이에 결합되어 국가에 동원될 수 있는 어머니상을 살피고자 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민족, 젠더, 어머니상, 세대를 이분법적으로 위계화하고 결국 국가에 동원될 수 있는 단일한 정체성을 주조하려는 분단 체제의 모순을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 작가로 발표하고 공연된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을 연출하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작가로 출발을 했지만 제가 감각하는 연출적인 형식으로 작품을 좀 더 드러내보고도 싶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이 <상자들의 지평선>이고 두 번째가 10월 31일(목)부터 11월 3일(일)까지 씨어터 쿰에서 공연되는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입니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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