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많은 오케스트라와 열정적인 배우만 있다면 화려한 무대가 없어도 완벽한 오페라가 완성된다.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콘서트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정식 오페라 무대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콘서트오페라는 무대 장치나 의상 없이 진행하는 연주회 형식의 오페라 공연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정명훈이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주단체인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최고 수준의 오페라 음악을 선보였다.
2012년부터 '오텔로'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수많은 오페라를 함께 공연한 정명훈과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의 호흡은 그야말로 절묘했다.
일흔이 넘은 정명훈은 여전히 힘 있고 날카로운 지휘로 오케스트라를 압도했고,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정명훈의 사소한 제스처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명확하게 연주에 반영했다. 관객들의 박수가 예상되는 지점을 정확히 예측하고 오른손을 들어 오케스트라 연주를 끊는 모습으로 자신의 건재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커튼콜 때는 대기실에서 나오는 정명훈을 향해 발을 구르며 존경을 표하는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정명훈과 단원들의 신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정명훈과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는 다음 달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가 속한 이탈리아 라 파티체 극장에서 오페라 '오텔로'를 함께 공연할 예정이다.
주인공 '비올레타' 역의 소프라노 올가 페레탸티코와 '제르몽' 역의 바리톤 강형규 등 성악가들도 비좁은 무대 위에서 혼신을 다한 연기와 노래를 펼쳤다. 이번 공연의 출연진 그대로 정식 오페라 무대를 올려도 될만한 정도였다.
특히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비올레타'가 떠난 연인 '알프레도'를 기다리며 부르는 3막 아리아 '지난날이여 안녕'은 한국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었다. 페레탸티코가 힘을 빼고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는 관객의 감정을 극한으로 치닫게 했다. 유럽의 굵직한 오페라 무대에서 주·조연으로 뼈가 굵은 페레탸티코의 표정 연기도 압권이었다. 당연하게도 객석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속출했다.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사랑을 훼방 놓는 '제르몽'을 연기한 강형규는 오페라 본고장 유럽에서 활약하는 한국 성악가의 저력을 몸소 증명했다. 강형규가 독창한 2막의 아리아 '프로벤차 고향의 하늘과 땅을 너는 기억하니'는 관객에게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 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알프레도' 역의 미국 출신 테너 존 오즈번의 노래와 연기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2007년 오페라 '빌헴름 텔'로 데뷔한 뒤 수많은 무대에 오른 오즈번이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연습을 덜 한 탓인지 발성과 연기에서 부족함을 드러냈다.
정명훈은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와 함께 국내서 3차례 더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5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르고, 8일과 9일에는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과 세종예술의전당에서 협연을 선보인다. 세 공연에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3번'과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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