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전지적 임명 시점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17, 18세기 유럽 귀족 스포츠 중에 '여우 던지기(Fox tossing)'라는 게 있었다. 말을 타고 스틱으로 공을 쳐 골을 넣는 '폴로(Polo)'처럼 현대까지 이어지진 못했다.(폴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까지 정식 종목이었다) 여우의 몸통을 손으로 말아 쥐고 멀리 던지는 건 아니었다. 일정 공간에 기다란 천을 깔고 양 끝에 선수들이 서면 여우를 자유롭게 풀어 둔다. 여우가 천 위를 지날 때 양쪽에서 천을 강하게 당기면 여우가 튕겨 올라가는데 높이 올라갈수록 승리에 가까웠다.

승리의 함성이 커질수록 여우의 통성(痛聲)은 커졌다. 낙하 장치는 따로 없었다. 여우의 죽음이 전제였다. 동물보호단체가 봤다면 경(更)을 칠 일이다. 스포츠에 기록의 속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우 던지기'의 퇴출은 자연스럽다. 기록이 없다는 건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석에 일가견(一家見)이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현미경 야구'라는 훈장 같은 별칭의 일본 프로야구는 매년 자국 출신들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만큼 높은 수준을 인정받았다. 축구도 그에 못지않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1위로 16강에 진출했던 일본은 2050년 월드컵 개최와 우승을 야심 찬 목표로 내놨다. 2050년까지 ▷선수 커리어 정비 계획 ▷선수·지도자 육성 계획 ▷전술 확립 계획 ▷J리그 클럽 강화 계획 등이 들어 있다. 이른바 'Japan's way' 프로젝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한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과정이 정부 감사 중간 결과에서 일부 드러났다. 감독 선임 권한은 없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가 최종 면접을 맡았다고 한다. 위르겐 클린스만이 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어색한 절차를 축구 팬들은 직감했던 터였다. 선수로 성공했던 이들이 감독으로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을 사람들이 대한축구협회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전지적 임명 시점'이라면 모든 것이 쉽게 설명된다.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미리 토론하고, 판을 다 정리한 뒤 마지막 단계로 합의 의사를 표현하는 일본의 네마와시(根回し) 문화와도 다르다. 더구나 선임 과정과 관련한 기록이 없다는 건 기본이 안 됐다는 증거다. 구린내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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