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령 주산, 태고의 자연 같은 마을
육체와 영혼이 함께 사는 시간을 한평생이라 한다면 한평생 후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까?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몫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그 후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지 못하기에 최선을 다해 사는지도 모른다. 집을 답사하며 과거든 현재든 집과 함께 생(生)을 사는 사람들의 삶과 철학을 배우기도 한다.
이번엔 차원이 다른 집으로 발길이 닿는다. 삶을 위해 생겨난 집이 아닌 영혼의 안식처 '무덤'이라는 집이다. 추석을 지나며 조상의 무덤을 정갈히 다듬는 후손들을 보며, 생 이후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생각이 머문 이유다.
현재 우리가 딛고 누리는 이 땅은 누군가의 무덤이라는 생각은 변한적 없다. 그러기에 땅을 대할 땐 늘 경건해진다. 고대로부터 무수한 전쟁이 일었고, 사회가 생기면서 죽은 자들에 대해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무덤', '묘지' 때로는 '릉(陵)'이라는 칭호를 붙여 살아 있을 때의 지위를 죽은 후에도 매기곤 했다. 누구는 한 평 무덤도 이름도 없이 흩어졌겠지만, 누구는 거대한 봉분을 쌓거나 비(碑)를 세워 기림을 받곤 한다.

고령 주산(310.4m) 자락엔 죽은 자들의 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다. 산 사람이 죽은 자를 위해 만든 마을. 이곳은 사방이 죽음이다. 아픔과 슬픔, 때로는 무서움으로 여겨지는 죽음이 이 마을에서만은 평온함과 아늑함이 된다.
주산 능선을 오른다. 오를수록 풍경은 깊어지고 아늑해진다. 줄지어 늘어선 무덤은 무엇을 신봉이라도 하듯 여기서만은 색다른 장관을 이룬다. 산 능선이라지만 나무보다 흔한 것이 무덤이다.
무덤과 무덤 사이로 난 길과 길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과, 길을 딛고 바람을 맞으며 걷는 산 자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고분은 죽은 자의 육신을 묻은 단순한 무덤의 개념이 아닌 오래된 영혼의 찬연한 이야기가 묻힌 집이다. 세월의 덕인가. 지산동 고분군은 이제 죽음의 결과가 결집 된 터가 아니라 마치 태고에 일어선 자연 같다.
◆놀랍구나, 대가야인의 정신과 혼이여
고령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우곡면 장기리 암각화가 그리 증명한다. 암각화는 고령의 하늘과 산, 강과 땅을 받들며 경건히 살아온 고대 고령인의 신성한 기록이다. 신성한 땅 고령에 낙동강을 젖줄로 삼아 탄생한 정치연맹이 있었다. 가야(伽倻)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한 경쟁에서도 탄탄하게 일어섰다.

단일 국가는 아니었지만 낙동강 일대에서 깊게 뿌리내린 나라였다. 철기 제작술이 워낙 뛰어났기에 여느 국가 못지않게 빨리 번성했다. 전쟁이 빈번했던 한반도는 물론, 바다 건너 일본까지 가야의 철기는 무서울 만큼 빠르게 퍼졌다. 어디 무기뿐이랴. 농기구와 장신구, 생활 도구까지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토기 제작술은 또 어떠랴. 정교하고 화려한 가야만의 토기를 만들어 썼다. 대가야의 예인 우륵은 신라에 투항한 후 가야금을 만들어 멸망한 나라의 소리를 지금까지 지켜내고 있다. 이처럼 가야의 문화는 주변 나라들과는 견주지 못할 만큼 독창적이었다.
특히 고령 지역에서 세력을 펼쳤던 나라는 대가야였다. 김해지역의 금관가야가 쇠퇴하자 대가야는 가야 정치연맹의 으뜸으로 나선다. 경제력과 정치력이 우수했던 대가야의 문화는 찬연했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았다. 외교적 고립을 겪던 대가야는 신라 진흥왕 시기 흔들리기 시작하여 결국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대가야인들의 단순한 무덤 떼이기만 할까. 아니다. 대가야인들의 정신과 혼이 베인 집이며 마을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늘어선 크고 작은 무덤은 마치 태초의 자연 같다. 주산 능선을 걷다 보면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무덤 또한 크고 웅장해지는 걸 알 수 있다. 그중 44호 고분의 아우라는 감히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웅장하다.

위엄이 잔뜩 서린 거대한 고분의 주인은 누구일까. 다져 올린 봉분의 높이, 너른 땅, 고령군청이 자리 잡은 시내가 한눈에 훤히 내다보이는 위치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덤의 주인은 생전 엄청난 지배자임을 가늠하게 된다. 지배자는 죽어서도 격이 다름을 부여받은 게다. 죽어서도 세상을 내려다보며 호령하려 했던 게다.
어마어마한 부장품이 쏟아졌다. 지배자들은 죽어서도 부(富)를 잃지 않았다. 어디 부장품뿐이랴. 따르던 이들은 소유물처럼 줄줄이 따라 묻혔다. 곁을 지키던 무인과 신하와 종, 기술자와 백성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를 위한 순장은 각계각층에서 섬찟하리만큼 고르게 이루어졌다. 아마도 사후 세계에서도 삶이 지속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이르는 집
지산동 고분 마을은 바람과 햇살뿐, 어떤 잡음도 없다. 봉분들의 유연한 곡선만 이어질 뿐, 지배자도 따르는 이도 없다. 죽은 후 지배와 복종이라는 현실의 법칙은 무의미하다. 지배자의 욕망도 따르는 이의 추종도 무의미하다. 무덤과 무덤 사이를 감싸고 도는 건 오로지 오래된 침묵이다.
산 자들의 세상은 끊임없이 떠들썩하다. 주장은 격렬하고 외침은 거세다. 쉴 틈 없이, 쉴 공간 없이 뛰다가 정신없이 살다 삶에 쫓기고 내몰린다. 서로가 화합하다 때론 원수가 된다. 경쟁의 구도에서 경쟁하듯 더 크고 더 화려한 집을 찾는다. 지친 몸 누일 집 또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경쟁의 대상물이 된 지 오래다.
우리가 마지막에 머물 곳은 어디일까. 무덤이 아닐까. 한때 영화를 누리던 대가야 지배자들이 사후에 이룬 마을은 이제 세상의 소란을 뒤로 하고 오직 풍경으로만 존재한다. 무덤이 크고 작다 해서, 자리 잡은 위치가 높고 낮다고 해서, 생(生)과 사(死)가 달라진 건 없다. 죽음 앞에서는 권력도 서열도 재산도 무의미하다. 모두가 평등하지 않은가.

주산 능선에 올라 보면 깨닫게 된다. 산(生) 자들의 마을은 산(山) 아래 있고, 죽은 자들의 마을은 산 위에 있다는 것을. 주산으로 오르는 건 대가야인들이 죽음으로 이룬 마을로 접어드는 일이다. 소란을 멈추고 천천히 오래 걸을 일이다. 살아온 날을 돌아보며 살아갈 길을 가늠해 보는 침묵의 여정이다.
지산동 고분군은 죽음 앞에 숭고했던 대가야인들의 마지막 예술이다. 죽은 자를 위하여 산 자가 올리는 예의 집이다. 누군가는 터를 잡고, 누군가는 땅을 파 고르고 누군가는 흙을 다져 밟으며 하늘 높이 정성을 다했을 집이다. 산 자의 정성으로 죽은 자의 집은 무너지지 않고 천년을 거뜬히 건너 오늘을 산다. 웅장하거나 거창함 없이 반원을 그리며 침묵하는 죽은 자의 집들 앞에 둥그스름한 위로와 사색을 배운다.
산 능선을 내려와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돌아본다. 아득히 멀다. 푸른 자연 속에 또 다른 자연이 일어선 듯 여유롭다. 내가 바라는 한 생(生)이 일어서고 멸한 후의 모습은 바로 이런 빛이다. 이상하리만치 숭고한 빛이다.
아름다운 집들을 만난다. 문패도 없이 그저 곡선과 곡선이 맞닿아 이어지는 고령 주산 능선엔 우리가 언젠가 이르게 될 그런 마을이 있다.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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