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에게 죽음은 최상급의 비유다. 흔히 죽여준다, 죽어도 좋아, 좋아 죽겠다, 등 죽음은 비교 대상이 없는 최고의 형용사로 가늠한다. 문학 이론에서도 오르가즘을 작은 죽음이라 할 때 에로스의 절정은 정사(情死)로 본다. 명품 회사가 새로 출시한 향수에 Poison(독)이라는 이름을 붙일 때는 죽음과 생명, 독성을 동시에 환기하는 유혹의 전략으로 구매자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인간의 잠재의식을 파고드는 이러한 고도의 상업적 의도는 대부분 시장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고 보니 1973년 발매한 로버타 플랙의 노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그의 노래가 나를 사로잡아요)"도 있다. 이 노래 또한 가사와 리듬의 중독성 때문인지 지금까지 꾸준히 리메이크되고 있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1874)는 프랑스 시인 앙리 카잘리스(Henri Cazalis)의 기괴한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12시를 알리는 시계 종이 울리면 해골들이 나와 춤을 추다가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에 무덤 속으로 사라진다는 줄거리다. 죽음과 춤은 낭만적 광기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이다. 생상스는 산 사람이 죽은 영혼과 춤을 추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괴담을 적절히 차용해 음악으로 구성했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지금도 해골 반지, 해골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나 해골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선호한다. 대중문화의 스타들은 허연 얼굴에 자줏빛 입술을 하고 나와 고독하고 음산한 노래를 불러댄다.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주체할 수 없는 젊음과 생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대변한다. 끓어오르는 청춘은 죽음 따위를 우습게 여기기도 하지만,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의 흉내를 내는 이해 불가의 충동은 삶에서 강등당한 이들의 고통과 불안, 상처를 이야기하고 위로한다. 그러기에 고딕 취미는 어둠과 죽음을 매개로 지금껏 젊은이들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어쩐 일인지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 공연의 주요 주제도 죽음이었다. 목 잘린 마리 앙투아네트와 바스티유 감옥이 등장하고 클래식 공연에서도 '죽음의 무도'를 비롯하여 오펜바흐(천국과 지옥), 드뷔시(목신의 오후), 비제(카르멘), 라벨(물의 유희), 사티(짐노페디), 뒤카(마법사의 제자)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의 작품이 총출동하여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대부분의 관중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프랑스식 미학을 과시했다. 젊음이 용솟음 치는 생명의 축제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는 다소 돌출적이었다. 하지만 주최 측은 오히려 죽음을 통해 넘치는 생명력과 풍요의 제전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죽음은 생명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장치이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역시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고 왈츠풍의 춤에 방점을 둔 경쾌한 음악이다. 개막식에서 복면을 쓰고 성화를 든 남자가 루브르박물관에 도착하자 '죽음의 무도'가 흐르고 명화 속의 인물들이 하나둘 깨어난다. 삶의 가장 정점인 젊음의 제전에서도 죽음의 사본들을 통해 청춘의 열기와 메멘토 모리를 동시에 강조하고 싶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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