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성걸 칼럼] 더이상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윤석열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평검사 시절에도, 검찰총장으로서도 정권의 압력에 당당히 맞서는 결기를 보인 윤석열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검사로 정의를 지키는 선봉에 섰던 윤석열이 적어도 국민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갑자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한 윤석열의 정치·행정적 능력에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 인재는 넘쳐 나니 사람만 잘 쓰면 얼마든지 국정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기에 그가 중심을 잡고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해 원칙이 통하는 사회, 공정과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 특권을 없애고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유권자들이 이렇게 생각한 배경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임도 크다. 변호사 시절부터 검사 사칭이나 여배우와의 문란한 사생활 의혹이 제기된 것부터 형과 형수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 입원 시도 및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 성남시장 시절의 비리 의혹, 법인카드 불법 사용 등 그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가 웅변적으로 말해 주는 것은 그가 결코 정직한 정치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에는 동문서답으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제 허물은 보지 않고 남의 허물만 비난하는 것이나 조폭을 닮은 주변 인물들을 보고 나라 걱정이 앞선 유권자들이 윤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임기 중반을 지나는 지금, 그 선택의 결과는 실망을 넘어 참담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거대 야당의 횡포는 일찍이 예상했던 바지만,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오히려 야당은 물론 여당과의 갈등에 빠진 것에는 할 말을 잃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무력화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를 정상화할 정치는 사라지고 오직 대결뿐이다. 민주당이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3명을 추천하지 않으면 헌법재판소도 무력화된다.

민주당은 장관은 물론 검사든 판사든 맘만 먹으면 탄핵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는 성원이 되지 않아 아예 재판 자체를 열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입법권을 장악한 민주당이 헌재를 무력화시킨 이후에 이재명 대표 사건의 담당 검사들을 탄핵하면 정권이 끝날 때까지 헌재는 어떤 판결도 할 수 없다. 각 부처 장관들도 탄핵하면 헌재의 심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중국 고전인 대학(大學)에 수록된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교과서에도 나온다. 사실은 수신제가 앞에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이라는 말이 있다. 사물의 이치를 깨우친 이후 뜻과 마음을 바르게 한 이후에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를 이룬다는 뜻이다.

대선 때 국민과 약속했던 '공정과 상식'의 회복은 고사하고 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윤 대통령은 사물의 이치도 깨우치지 못하고 마음도 바르지 않은 사람인가.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비롯해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문제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의혹은 더욱 커졌다.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장시간 전화 대화 녹취록이 나온 것은 누가 봐도 대통령 부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최재영이라는 목사를 빙자한 사기꾼에게 농락당해 300만원짜리 백을 선물받고 그 녹화 영상이 공개되어 국민의 짜증을 한껏 높이더니, 급기야 명태균이라는 희대의 정치 브로커와 주고받은 문자를 볼모로 정권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언제 어떤 녹취가 추가로 공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민주당이 이재명 방탄을 목표로 목이 터져라 외치는 탄핵이 현실화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권력은 겸손해야 한다. 권력자는 더욱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빼앗겨 국민에 호소해야 할 집권 여당은 더욱 그러하다. 당장 국민께 사과하고 김 여사와 관련된 모든 사건의 특검을 수용하라. 버티면 스스로 죄가 있음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검찰은 즉각 명태균을 수사하라.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수사 결과는 검찰을 없애자는 이유가 될 것이다. 사법부는 이재명 대표의 재판을 서둘러라. 신속한 재판을 통해 다음 대선 전에 사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하면 사법권에 의해 이 땅의 민주주의가 파괴될 것이다.

세계는 급변하고 대한민국은 활력을 잃고 있다. GDP의 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의 위기다. 지금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지 못하면 윤 대통령과 여야 의원 모두 나라를 망친 만고의 역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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