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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비공개’가 민원을 불식시킬까

김지수 사회부 기자
김지수 사회부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는 시내버스 노선 체계 개편 방안 수립 용역 중간 보고회가 열렸다. 10년 만에 추진되는 대구 시내버스 노선 개편 초안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리였지만 참석자는 20명 남짓뿐이었다. 대구시에 사전 참가 신청을 하고, 허가를 받은 사람들만 참석하도록 한 탓이다. 참석자 20여 명 외에는 보고회장 입장은 물론 사진 촬영조차 불가능했다. 2시간에 걸친 보고회가 마무리될 때쯤에는 '비공개 보고회이니 자료는 모두 자리에 두고 가시라'는 진행자의 당부가 바깥까지 들렸다.

대구시는 지난 2022년 10월부터 시비 6억4천900만원을 투입해 '시내버스 노선 체계 개편 방안 수립 용역'을 진행해 왔다. 2년이라는 시간 끝에 시민들에게 공개된 내용은 개편의 대략적인 방향성을 담은 보도 자료 외에 없었다. 20명을 제외한 나머지 시민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밀리에 진행된 보고회였다.

대구시는 이번 노선 개편을 통해 직행 노선과 장거리 급행 노선을 각각 2개씩 신설한다. 현재 122개 노선 중 17개는 폐지, 22개는 대폭 조정, 32개는 일부 조정돼 전체 노선의 58.2%가 달라진다. 경산·하양 방면 노선 운행은 효율화하고 수요가 적은 분리 운행 구간을 통합해 배차 간격을 최소화한다. 구간이 중복되는 노선은 통·폐합해 효율화하고, 대구도시철도 1·2호선과 중복되는 노선은 폐지하는 게 개편안의 주된 방향이다. 이렇듯 전체 노선의 58%가 대폭 바뀌면 개편으로 인한 영향을 피해 가는 지역은 없을 듯하다.

시민 대다수가 영향을 받게 되는 대대적인 개편임에도, 대구시는 주민 설명회 이전까지는 세부 노선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비공개 이유로는 '민원 발생 우려'를 내세웠다. 담당 부서는 노선이 사전에 공개될 경우 노선이 빠지거나 달라지는 곳에 사는 시민들의 항의 전화 등이 빗발칠 거라며, 확정된 최종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수차례 내비쳤다.

10년 만의 개편으로 버스 노선 절반 이상이 달라지게 되면 10년간 매일 같은 버스를 이용하던 시민들도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달라지는 노선에 따라 출퇴근 방법과 시간을 조정하고, 자주 가는 목적지까지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는 등 바뀐 체계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 전문가는 용역 보고회는 대시민 보고회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착수 보고회부터 중간 보고회까지 시의원과 시민들에게 내용을 공개하고 의견 수렴을 거쳐 방향을 수정해 나가는 자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용역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세부 노선이 공개되지 않은 점을 두고는 '자신이 없어 보인다'고 꼬집기도 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개편안은 이달부터 공개될 예정이다. 시는 9개 구·군 대상 주민 설명회에서 개편안 초안을 공개할 방침이다. 하지만 2년 동안 연구한 내용을 한 번에 공개하는 게 미리 공개하지 않았을 때보다 민원을 줄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개 시점을 늦춘 만큼 기대는 클 것이고, 주목도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내버스 개편안은 전문가와 관계자만 모아 놓고 밀실에서 논의됐다. 논의 과정 초기부터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면 보다 많은 공감대와 수긍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시행 직전 내용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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