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식칼의 질감이 스멀거리며 기어 나온다. 바다의 물살이 살갗에 화석처럼 박혀 있다. 시퍼런 살결, 그러면서도 순백 하늘의 색감도 교차한다. 바다와 하늘의 색채가 이놈의 피부에 각인돼 있는 것 같은, 이름하여 '고등어'. 고등어, 모르긴 해도 경상도의 생선인 것 같다. 특히 안동‧부산은 고등어와 일심동체의 고장이다.
◆부산은 꼬등어, 안동은 고디
'등이 높고 통통하다'고 이름 붙여진 '고등어'(高登魚), 순조 때 정약용이 쓴 '자산어보'에는 복부에 반점이 있는 경우 '배학어', 없으면 '벽문어'(碧紋魚)로 불렀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칼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고도어'(古刀魚)라 했다. 고등어의 새끼는 '고도리'라 한다. 경상도·전라도 등지에서는 고등어, 강원도에서는 '고망어', 함남에서는 '고동어', 함북에선 '고망어'라 한다. 특히 부산에서는 '꼬등어', 안동에서는 '고디'라 한다. 일본에서는 사바(鯖), 중국에서는 태파어(台巴魚), 대패어(黛覇魚), 청화어(靑花魚), 청어(靑魚) 등으로 불린다.
고등어. 우린 그를 '저등어'처럼 대했다. '만만한 게 고등어'였던 시절 탓일까. 간독에서 잘 염장돼 나온 자반고등어. 반찬의 마지막 보루나 마찬가지였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소금이 최강 부패방지제였다. 염도가 너무 높아 콩알만큼 베어 물어도 짠내가 진동했다. 군불을 위에서 구릿빛으로 타는 그 냄새는 막힌 오감을 뻥 뚫어주기에 충분했다. 노모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다 양보하고 뼈에 붙은 살점만 빨아 먹었다. 자반고등어는 고갈비를 거쳐 고가의 고등어회 시대까지 열었다.
◆부산공동어시장
고등어의 연대기를 위해 맨 먼저 부산공동어시장으로 간다. 거기가 바로 대한민국 최대 고등어 집하장이다. 많을 땐 24척의 고등어 운반선이 접안해 14만여 박스 분량의 고등어를 바닥에 풀어낸다. 그걸 소분류해서 나무 상자에 담기 위해 150여 명의 아지매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오전 6시부터 경매가 벌어진다. 6명의 경매사와 100여 명의 중간도매인 간에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현재 국내 유통 80%의 고등어가 여기서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고등어는 한 척의 배로는 절대 잡을 수 없다. 선단을 이뤄 잡는다. 국내에서 허가된 선단은 모두 24개. 이를 '대형선망선단'이라 한다. 선망(船網)은 사람이 그물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배의 동력을 이용해 그물을 둘러쳐 잡는 방식이다. 선주들은 대형선망수협 회원인데 부산공동어시장 바로 옆에 사무실이 있다.
고등어는 월~12월, 전갱이는 5~8월이 조업 적기. 매일 조업을 할 수 없다. 물살이 센 월령기(매월 음력 14~19일)에는 조업하지 않는다. 제주도 성산포~추자도 사이 조업 구역에서 잡은 고등어는 14시간 넘게 걸려 위판장에 도착한다. 하역용 그물의 아랫단이 풀린다. 육체노동의 절정을 보여주는 리어카 아저씨가 산처럼 싣고 온 상자를 일하기 좋은 곳에 집어 던져놓는다. 베테랑은 리어카 한 대에 무려 250개의 나무상자를 쌓을 수 있다.
10분간 휴식. 여긴 원두커피 사각지대. 달달한 자판기 종이커피가 작렬한다. 밤참이 고프면 공동어시장 가장 후미진 데 자릴 잡고 있는 '후생식당'으로 간다.
◆고등어골목
부산 시어(市魚)와 서구의 구어(區魚) 모두 고등어. 공동어시장 고등어는 동절기를 틈타 용두산공원 인근 골목, 자갈치시장 등 도심 곳곳을 파고든다. 영도와 송도를 만난 고등어는 고등어추어탕과 고등어초회(시메사바)로 변주된다.
'고등어해수욕장'으로 불리는 송도해수욕장. 골목 입구에 '100년 송도골목길'이란 아치가 서 있다. 근처에 '부산고등어빵집'이 보인다. 이혜나 사장. 부산을 위해 직접 관광용 캐릭터빵을 개발했다. 서울에서 창원을 거쳐 부산에 자릴 잡은 빵쟁이다. 15년 전 동래 온천장 근처에서 '앙꼬빈'이란 카페를 운영하다가 갑자기 부산과 서구의 상징이 고등어란 사실을 알고 고등어빵집을 차렸다. 참고로 송도에선 매년 고등어축제(15회로 올해는 오는 25~27일)가 열린다.
부산에는 고등어 전문점이 족히 100개는 넘을 것 같다. 부산 사직야구장 인근에 차린 선망수협이 직영하는 '한어부의고등어사랑', 그리고 고등어초회와 곰피시락국으로 이미 전국적 식당으로 자릴 잡은 영도의 '달뜨네' 등이 눈길을 끈다. 서구 암남동에는 부산고등어식품전략사업단까지 있다. 메뉴도 매우 다양하다. 자갈치시장 내 고등어추어탕과 자반고등어백반, 고갈비, 고등어회, 시메사바(고등어초밥), 고등어덮밥, 혼밥족을 겨냥한 듯한 고등어도시락정식, 묵은지고등어 등으로 연결된다. 대형선망수협이 2015년 고등어 레시피 공모전을 통해 고등어 레시피 33편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뿌리채소고등어완탕'이 대상을 수상했고 '고등어단호박치즈크로켓'과 '고등어치즈스틱' 등이 눈길을 끌었다.
시메사바. 대구쪽에는 좀 생소한 메뉴다. 시메는 '졸라매다', 사바는 '고등어'. 시메사바는 일본의 간고등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부당한 고등어 뒷거래를 의미하는 '사바사바'란 말도 사바에서 파생됐다.
좀 내공 있는 고등어집은 수조도 모양이 다르다. 원형수조다. 고등어는 끝없이 돌고 돌기 때문에 수조는 원통형이어야 한다. 성질이 급한 고등어는 수조에서도 오래 버티지도 못한다.
고온에서 금방 구워내야 제맛이 난다. 200℃ 정도에서 구우면 껍질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접시에 담아낼 때도 모양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400~500℃ 고온에선 스테이크의 육즙처럼 체내 불포화지방산이 빠져나가지 않아 겉은 누른 비단천처럼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된다. 꼭 바게트 같은 질감이다.
영도 달뜨네에서 시메사바를 먹었다. 고등어회와 초밥의 맛이 공존했다. 고급 참치 뱃살은 기름기가 너무 질퍽해 몇 점 먹으면 속이 부대낀다. 고등어초회는 그렇지 않다. 산도 조절에 실패한 고등어는 목에 잘 걸리지만 적당한 산도라면 방어·밀치·참치회를 혼합해 놓은 씹힘성을 얻을 수 있다. 부산의 고등어추어탕은 된장이 들어간 시래깃국 같다.
◆충무동 골목의 고갈비
비싼 소갈비는 언감생심, 가난한 소시민들은 고등어 등뼈에 붙은 살점을 갈비살처럼 뜯어먹었다. 처음에는 등살부터 먹고 마지막에 남은 뼈는 몇 등분해 나눠먹는다. 고등어갈비, 그 준말이 고갈비.
부산은 고갈비의 탄생지. 용두산 아래, 광복동 거리 뒷편 미화당백화점 주차장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남마담집'이 사령부 격이다. 충무동 골목시장 안에 고갈비특화거리가 서구청 주도로 만들어졌다. 입구에 들어서면 고갈비골목임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과 꼬등어 캐릭터가 반긴다. 200여m 정도 걸어가면 골목시장 사거리가 나온다. 원래 '파전골목'이었으나 서구청 등의 도움으로 고갈비골목으로 변신했다. 충무동 골목시장 맞은편은 해안시장인데 여기 가면 생선구이집이 몰려 있다. 고등어 정식을 파는 집이 네 집(한양, 진주, 오복, 할매집)이 몰려 있다. 특히 이 가게는 아직 연탄불을 이용해 철판에서 고기를 굽는다.
용두산 남단 언덕바지로서 광복로와 연결되는 골목에 고갈비를 구워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어 고갈비 골목이라 했다. 1952년 경주에서 온 한순돌 할매가 미화당 뒷골목에 루핑지붕의 판잣집을 얻었다. .국수장사가 잘되어 곁에 붙은 지금의 가게를 사들여 방 2개와 2층 다락방이 있는 선술집인 '할매집'으로 확장된다. 할매가 고갈비를 발견한 건 아니다. 60년대 어느날 할매집 옆에 노총각 정영기 씨가 막걸리집을 연다. 그는 자갈치시장에 버려진 고등어를 구워냈다. 대박이었다. 이걸 본 할매집에서 남씨의 고갈비를 더 맛갈나게 벤치마킹한다. 정 씨의 행신은 정말 여성스러웠다. 단골들이 그걸 빗대 '남마담(남자마담)'이라 부른 게 상호가 됐다. 할매집과 남마담집에서 번져 나간 고갈비는 70~80년대에 이르면 담배집·돌고래·청기와집·맘보·고바우·물갈비·갈박사·단골집·청코너·홍코너 등 12집으로 늘어난다.
고갈빗집들을 찾는 고객은 주머니가 얇은 대학생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한량들이었다. 그들은 탁주를 '야구르트'라 부르고, 깍두기는 '못잊어', 얇은 무가 동동 뜨는 물김치는 '파인애플'이라 했다.
2008년 재밌는 모임체가 만들어진다. '골목, 부산사람'이다. 거기서 부산 골목인문학 관련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1권이 '부산고갈비 이야기'. 시인, 극작가, 평론가 등 5명의 문인, 사진작가 3명, 4명의 화가, 향토사학자 등이 합심했다. 최원준·신정민시인은 고갈비골목이란 시를 고등어한테 헌사하기도 했다.
내가 고갈비 생각이 나면 들리는 단골 보리밥집이 두 곳 있다. 앞산 고산골 '보금식당'과 가창 대림생수 옆 '새감나무집'이다. 오븐에 굽혀져 나온 고등어의 등뼈를 일으켜 젓가락으로 한 점 살점을 찝어낼 때의 식감은 누구한테 양보하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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