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대의 미스터리 훈민정음 상주본 실종 17년, 언제 찾나?

국가유산청 강제 환수 총력…배씨 앞에서는 무기력
배씨 상주본 반환 조건에 돈과 진상규명 요구…국가유산청 수용 불가능

배익기 씨가 매일신문에 공개한 훈민정음 상주본 사진. 2015년 배 씨 집에 불이나 일부가 훼손돼 있다. 배익기 씨 제공
배익기 씨가 매일신문에 공개한 훈민정음 상주본 사진. 2015년 배 씨 집에 불이나 일부가 훼손돼 있다. 배익기 씨 제공

17년째 행방이 묘연한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解例本) 상주본은 언제쯤 세상에 공개될 수 있을까?

9일 한글날을 맞아 상주본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기막힌 상황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상주본 소유권과 보상을 둘러싼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과 개인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첨예한 가운데 국가 환수는 요원한 상황이다.

◆해례본이란?

해례본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창제·반포된 훈민정음과 동시에 출간된 한문 해설서다. 훈민정음, 즉 한글이 어떤 원리와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대중 문자 시스템에 대해 이를 만들어낸 사람이 직접 해설을 달아놓은 자료는 전세계에 오직 훈민정음 해례본뿐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알려져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판본은 두 점이 전부다. 일제 강점기 때 간송 전형필 선생이 기와집 열 채 값을 치르고 구입해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간송본'(국보 제70호·세계기록유산)과 2008년 상주에서 발견된 '상주본'이다.

간송본은 최근 대구 간송미술관에 전시되면서 여전히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반면, 상주본은 배익기(60) 씨가 2008년 일부를 공개한 뒤 바로 감춰버리면서 17년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수 백 년 된 국보급 고서적이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돼 보관 상태에 대한 우려도 크다. 지난 2015년 배씨 자택 화재로 아랫부분 일부가 불에 그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익기씨
배익기씨

◆국가유산청은 뭐 하나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은 국가 소유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등을 근거로 상주본을 도난 문화재로 분류, 법과 원칙에 따른 환수에 노력해왔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20여 차례나 반환 요청 문서를 보내고 배 씨와 여러 차례 면담하면서 상주본을 회수하고자 했다.

그런데도 배씨가 응하지 않자 자택과 사무실 압수수색 등 강제적인 방법도 시도했지만 끝내 상주본을 찾지 못했다. 배씨가 자주 가는 단골 다방까지 압수수색했지만 허탕을 치는 등 상주본이 감춰진 장소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배씨는 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상주본 반환을 대가로 돈을 주던지, 아니면 상주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재차 강조했다.

과거 배씨가 상주본 절도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을 때 검찰은 당시 문화재청에 상주본 감정서를 요구했고, 문화재청은 1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적시했다.

배씨는 이를 근거로 90%(9천억)는 국가에 양보하고 10%(1천억)만 주면 내놓겠다(매일신문 2015년 10월9일자 1면보도)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 국가유산청이 상주본 사건(훔친 게 아닌데 국가소유가 되도록 했다는 주장)을 조작했으니 진상 규명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진상 규명을 통해 자신의 소유가 되면 국가에 반환하지 않아도 되고 정당한 보상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국가유산청은 "법적 소유권이 국가에 있는 이상 보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배씨에게 돈을 줄 방법은 없다"며 "대법원 판결이 난 사건을 원점에서 시작해 다시 재판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상주본 공개는 배씨가 고집을 꺽는 등 태도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요원한 상황이다.

◆복잡한 상주본 소송 과정은?

상주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건 2008년 배씨를 통해서다. 그러나 또 다른 고서적 판매상 조모(2012년 사망) 씨가 (배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훔쳐갔다고) 상주본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상주본을 둘러싼 복잡한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2008~2014년까지 조 씨와 배 씨 사이에서 벌어진 소송은 크게 민사와 형사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민사에선 2011년 조 씨가 최종 승소해 상주본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2011년 절도 혐의를 둘러싼 형사 재판에선 배 씨가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가 2012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2014년 대법원에서 그대로 무죄로 확정됐다.

그 사이 조 씨는 사망했고 상주본을 당시 문화재청에 기부했다. 이에 배 씨는 형사판결에서 무죄가 확정됐으므로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2017년 문화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18년 2월 1심과 2019년 4월 항소심 재판부는 "형사사건의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상주본 소유권이 배 씨에게 인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고, 대법원 역시 상주본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고 최종 확정 판결했다.

◆상주본 환수 해결책은?

대법원 판결에도 상주본 환수가 갈수록 요원해지면서 접근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정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배씨를 은닉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가 소유 문화재를 무단 점유해 숨기고 있는 행위는 형사적으로 문화재보호법상 은닉죄에 해당하고, 민사적으로 강제집행을 방해하고 전시를 불가능하게 한 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도 물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문화재보호법에는 '국가지정문화재를 손상·은닉하는 행위에 대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다만 은닉죄 처벌에도 배씨의 태도가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많다. 지난 2011년 상주본 절도혐의재판 당시 징역 10년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상주본을 내놓을 경우 파격적인 감형을 시사했지만, 배씨의 입장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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