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국감, '허무'와 '흐뭇'의 온도차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비례)

이달희 국민의힘 국회의원(비례)
이달희 국민의힘 국회의원(비례)

"평소 공중화장실 안전비상벨을 보면 '과연 작동이 되는 것일까?' '누르면 누군가 달려와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나를 구해줄까?'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한 5대 강력범죄가 912건에 달하고, 이 가운데 강간 및 강제 추행 등 성범죄가 140건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안전 사각지대로 인식되고 있던 공중화장실 범죄 예방을 위해 지난 2021년 7월 국회에서는 공중화장실 내 안전비상벨 설치를 의무화하는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2023년 7월 법 시행 이후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 조례를 통해 안전비상벨을 설치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 소속인 우리 의원실은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안전 취약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공중화장실 안전비상벨 현황을 점검하기로 하고 거의 모든 직원들이 현장 곳곳을 직접 둘러보고 체크했다.

그 결과 위급 상황 발생 시 공중화장실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경찰 또는 관리 기관에 연결돼야 하는 안전비상벨 중 상당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먹통 비상벨'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벨이 아예 울리지 않거나 경찰 또는 관리 기관에 연결되지 않는 등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점검 현장 중 70% 이상이었다.

그래서 이 주제를 국정감사 질의 주제로 채택하고 안전비상벨 관리 방안을 시스템화하기 위해 입법 과제로 발굴했다.

며칠 후 이 내용을 보도하고 싶어하는 방송국이 있어 일주일 전 점검했던 공중화장실에 기자와 함께 재방문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작동이 멈췄던 안전비상벨이 거의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됐다. 아마 우리 의원실에서 국정감사 현장 취재로 점검했던 소식이 관할 경찰서와 자치단체에 전해져 수리가 됐던 것 같다.

그렇게 불통 안전비상벨 현장 취재는 실패로 끝났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 종일 현장에 동행했던 방송국 기자들에게도 무안했던 순간이었다.

결국 우리 의원실은 회의를 거쳐 이번 국정감사에서 안전비상벨 이슈는 국감 질의 주제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해당 질의를 준비하던 보좌진은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기진맥진, 허탈해했다.

반면 그 모습을 지켜본 본 의원은 '흐뭇'했다. 언론에서 관심을 갖는 현장감 있는 핫한 '국감 이슈'는 놓쳤지만,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해낸 것 같아 흐뭇했던 것이다.

초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등원한 지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국회가 국민들에게 표면적으로 정쟁과 대치의 장으로만 비춰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첫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많은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정부를 상대로 민생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안전비상벨 시스템을 점검했던 이번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느꼈던 '흐뭇'한 마음으로 국민 앞에 자신감을 갖고 국정감사에 임할 수 있어 다행이다. 국정감사의 성과가 눈으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도처에서 결실을 맺고 있을 것이다.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보좌진들의 열기로 국회의 10월은 가을을 알리는 시원한 날씨가 여전히 한여름처럼 뜨겁게 느껴지고, 국회의 밤은 대낮처럼 환하게 밝다. 부디 이번 국정감사는 여야의 정치적 술사만 난무하는 국정감사장이 아닌 국민의 삶에 희망의 불이 켜지는 민생 국정감사장이 되길 바란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