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도 슬개골 탈구가 있나요?" 동물 병원을 찾는 보호자들이 한결같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반려견의 슬개골 탈구발생률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슬개골(무릎뼈)의 형태와 기능은 사람과 같다. 슬개골은 대퇴골의 활차구라는 오목한 고랑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는데, 슬개골이 활차구를 벗어나서 측면으로 탈구되는 증상을 슬개골 탈구라도 말한다.
이를 그냥 방치하게 되면 골과 관절의 변형, 퇴행성 관절염 또는 전방십자인대의 파열을 일으키기 때문에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왜 우리나라 반려견에게 슬개골 탈구가 많나
생각해보면 이상하기도 하다. 동방예의지국 견공들이라 양반다리로 앉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나라 강아지들만 슬개골 탈구가 잘 생기는 걸까? 이것은 질문을 "슬개골 탈구는 어떤 개들에게 잘 발생하는가?"로 바꿔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다.
슬개골 탈구는 주로 소형견에게 잘 생기는 질병인데 국내에서는 소형견을 키우는 비율이 그 만큼 높기 때문이다. 수의학에서는 슬개골 탈구는 유전시켜서는 안되는 질환으로 간주하고 소형견 품종이라도 슬개골 탈구 소인이 관찰되는 개는 번식에서 제외하도록 권고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작을수록 더 비싸고 잘 팔리다 보니 반려견 분양자들은 체구가 더 작은 품종을 생산하려고 노력한다. 왜소하게 태어난 암컷과 수컷을 몇 세대에 거쳐 번식시키면 체형이 작은 혈통이 정착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체형이 작아지면 선천적인 결함은 더 많이 발생하는데 슬개골 탈구도 이러한 선천성 골형성 부전의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이다.
국내에서 길러지는 말티즈, 포메라니안, 토이푸들 등의 몸무게를 살펴보면 국제 표준 체형 대비 많이 적은 편이다. '미니', '티컵'이라 불리는 작은 혈통을 선호하는 풍토의 결과물인 것이다.
◆슬개골 탈구 꼭 수술해야 하나?
보통 동물병원을 내원하는 소형견의 절반 이상에서 슬개골 탈구 소인이 확인되는데 수술 여부는 무릎뼈의 건강 상태와 개의 성격을 고려해서 결정하게 된다.
수의외과학에서는 슬개골 탈구의 정도를 4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슬개골을 밀치면 탈구되었다가 곧바로 정상 위치로 돌아오며 통증은 없는 경우다. 2단계는 걸을 때 슬개골이 일시적으로 탈구되고 무릎에서 툭툭거리는 염발음이 관찰되며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3단계는 슬개골 탈구가 지속되면서 관절 변형이 진행되어 걸을 때 불편함을 자주 드러낸다. 마지막 4단계에는 관절 변형이 심해져서 무릎 관절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단계다. 퇴행성 관절염, 근육의 위축, 인대의 손상 등이 빠르게 악화되며 정상적인 보행이 불가능해 진다.
그럼 어떨 때 수술을 해야 할까? 이것은 획일적인 기준보다는 강아지들의 상태와 성향을 고려해 판단한다.
슬개골 탈구 초기 단계일지라도 과체중이거나 흥분을 잘하는 개는 그냥 놔두면 악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예방적인 수술을 권한다.
체중이 가볍고 얌전한 성향을 가진 개는 슬개골 탈구 2단계 까지는 경과를 지켜보는 편이다. 과체중을 경계하며,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아서 안정적인 보행이 유지되도록 주의한다.
슬개골탈구 3단계까지 진행되었다면 이미 적절한 수술 시기를 놓친 경우에 해당한다. 활차구 성형 수술과 경골변위 수술 등이 복합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수술 전에 정확한 골변형의 정도를 검사해야 하며, 수술 후에 재발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슬개골 탈구를 가진 개들이 뛰어내리거나, 드래프트하는 동작 중에 전방십자인대 파열이 잘 발생한다, 이런 경우 슬개골 탈구보다 더 힘든 수술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수술 후에도 완전한 기능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흥분을 잘하거나 활동적인 강아지의 경우 슬개골 초기에도 수술이 필요한 이유이다.
◆슬개골 탈구 의심 증상은?
슬개골 탈구는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1, 2단계에서는 통증이나 보행 이상을 관찰하기 어렵다.
집에서 반려견이 갑자기 한쪽 다리를 든다면 슬개골 탈구 뿐 아니라 추가적으로 근육이나 무릎 인대의 손상을 의심해야 하는데 반드시 수의사의 검진이 필요하다. 가끔 전방십자인대 파열을 구분하는 방법은 없는지 물어보는 보호자가 있는데 이 경우는 강아지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므로 금방 알 수가 있다.
걸음 걸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뒤에서 볼 때 엉덩이가 좌우로 흔들리는 정도가 심하다면 슬개골 탈구를 의심할 수 있다. 또한 반려견의 뒷다리 발바닥이 지면과 충분히 밀착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느 한쪽 발바닥이 지면에서 살짝 들리는 경향이 있다면 통증을 의심한다. 이외에 다리 만지길 싫어하고 허벅지를 자주 핥거나 무릎에서 툭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즉시 수의사에게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슬개골 탈구 수술비는?
반려견 슬개골 수술은 전신호흡마취를 통해 이뤄진다. 마취 전에 마취안전성 여부에 대한 혈액검사, 심전도검사, X레이, 초음파 검사 등이 필요하다. 수술은 탈구의 정도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며 수술 시간도 길어진다. 탈구가 심한 경우 활차구 성형술과 경골결절 변위술이 적용되기도 한다.
수술 후에는 4~5일 이상 입원이 필요하며 수술 부위의 부종이 안정되면 퇴원한다. 수술 후에도 검사와 재활 치료비 등이 필요하니까 수술비는 300만 원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결코 싸지 않은 치료비인데 다행히 반려견 슬개골 탈구 수술비를 보장하는 동물의료보험들이 출시되어 있다. 소형견을 입양한다면 슬개골탈구를 보장하는 동물의료보험 가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한다.
◆슬개골 탈구 수술 후 재발 원인은?
초기 1, 2단계의 예방적인 수술은 재발 가능성이 극히 드물다. 문제는 반려견의 성격이다. 수술 직후 수술 부위가 안정화되기 전에 격렬한 운동자극이 재발의 원인이 된다. 과체중에다 흥분을 잘하고 잘 뛰는 개는 퇴원할 때 수술 받은 부위에 무릎보호대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슬개골 탈구 3단계 이상은 이미 골변형과 관절변형이 일어났기 때문에 재발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재발이 아니더라도 보행의 불편함이 지속되기도 한다. 따라서 수술에 앞서 반려견의 관절 상태를 정확히 검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에는 3D CT검사를 통해 관절의 변형 여부, 근육의 위축, 퇴행성 관절염이 얼마나 속발해 있는지를 자세히 판별할 수 있다.
예민하고 흥분을 잘하고 경계심이 높은 개는 수술 부위를 유지하고 케어하기가 더 어렵다. 돌발적인 행동으로 수술받은 관절에 큰 충격을 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수술을 결정하기 전 개의 성격을 파악하고 가정에서의 케어가 얼마나 가능한 지 등에 대해 충분히 상의하고 수술을 결정해야 재발의 소인을 줄일 수 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반려견은 수술 전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상황의 공포감에 통증까지 더 해지면 환자견은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 이럴 경우 수술이 잘 되더라도 재활을 기피하는 주 원인으로 작용한다.
◆슬개골 탈구 수술을 피하는 방법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첫번째 방법은 체중을 가볍게 유지하는 것이다. 강아지가 슬개골 탈구 초기 단계에서 증상이 악화되는 주 요인은 체중의 빠른 증가에 있다. 강아지 성장기는 체중의 증가에 앞서서 그에 합당한 근육과 뼈의 성장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보호자의 사랑이 강아지의 비만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 강아지의 살이 통통하게 오를수록 뒷다리는 O자 형태로 휘어져 자라고 슬개골 탈구는 급속히 악화된다.
소형견일수록 성장기 체중은 가볍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두번째는 생활 환경의 개선이다. 성장기 무릎 관절이 건강해지려면 골 성장판의 운동 자극이 중요한데 실내의 미끄러운 바닥은 정상적인 골성장에 불리한 환경이 된다. 같은 체구의 소형견이라 하더라도 마당에서 자란 강아지의 관절이 훨씬 건강하다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소형견은 성장기 체중을 가볍게 유지하면서 흙이나 거친 바닥에서 맘껏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강아지가 침대와 소파를 오르내린다면 계단식보다는 비스듬한 경사면을 마련해주는 것이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영양제의 선택도 중요하다. 관절에 도움이 되는 칼슘이나 관절영양제는 분명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이 정직한 영양제인지 단순한 간식 거리에 불과한 지는 면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살펴보면 슬개골 탈구를 진단받았던 강아지들 중 고령이 되어서도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경우들이 꽤 있다. 나이가 들어 슬개골 탈구의 정도는 더 악화되었지만 여전히 일상적인 보행에 큰 불편함은 없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몸이 가볍고 산책을 자주하며 보호자를 잘 따른다는 점이었다.
박순석 수의사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임상수의사회 부회장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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