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의 한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는 70대 박철호 씨는 "아들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갈 때마다 이름을 잘 몰라서 힘들다. 열댓 글자가 넘는데 외국말이 섞여있으니 외울 수가 없겠더라"며 "택시기사한테 이름 대신 위치를 설명해주느라 애를 여러 번 먹었다. 이름이 한글로 적혀 있지도 않다"고 토로했다.
수년 간 이어진 도심 재건축 붐으로 대구지역 내 신축 아파트가 급증하는 가운데 아파트 단지명은 물론 외벽에 외국어와 영문표기만 무분별하게 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 또한 문제의식을 갖고 개선 계획을 밝힌 만큼, 대구시 차원에서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 이름에 '서양말'이 범람하기 시작한 건 2010년대 무렵부터다. 아파트가 브랜드화가 확고히 자리잡으면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아파트 이름을 외국어로 짓는 경우가 늘었다. 순우리말은커녕 한자로 조어된 이름이라도 쓰는 아파트는 가뭄에 콩나듯 보이는 수준이다.
아파트의 장점을 드러내는 수식어로 붙이는 펫네임이 대표적이다. 이를테면 교육여건이 좋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선 '에듀', 인근에 녹지나 공원 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할 때는 '포레'나 '파크' 등을 붙인다.
기존에 한글 이름을 가졌던 아파트들도 '고급화'를 이유로 이름을 고치는 경우가 흔해졌다. 외국어 남용 논란을 넘어서 외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노년층 등 일부 계층은 실생활에서 불편을 호소하는 모습이다.
정부와 일부 지자체는 이미 해당 문제에 대한 개선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언어문화 개선 실천과제 추진 계획' 아래 9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우리집 뭐라고 부를까' 공모전을 개최한다. 우리말로 된 아파트 이름을 추천하거나, 새로운 아파트 이름을 제안하는 형태다.
세종시 등 일부 지자체는 통상적인 아파트명에 더해 한글 이름을 병용해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생활권 별로 가온마을, 새뜰마을, 도램마을 등의 이름을 지정하고, 단지별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지자체가 아파트 이름 승인 권한을 가진 점을 활용한 대안이다.
반면 대구시는 지역에서도 비슷한 대안을 시도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수도권과 세종시는 대규모 도시정비사업이나 택지개발에 맞춰 해당 작업이 수월했으나 현재 대구시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
김명수 대구시 주택과장은 "현재 명칭 변경은 소재 지역을 오해할 가능성이 있을 때 이를 개선토록 한다거나,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명칭에 따른 낙인효과를 우려해 변경을 요청할 때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라며 "향후 대규모 정비사업 또는 택지개발을 진행하는 경우 혼돈이 없는 선에서 명칭 변경을 검토할 여지는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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