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직장을 다니는 아내를 위해 가난한 남편이 차린 점심상이다. 남편은 "왕후(王后)의 밥, 걸인(乞人)의 찬. 우선 이것으로 시장기나 속여 두오"라고 쓴 쪽지를 밥상에 올려뒀다. 이를 본 아내는 남편의 사랑에 감동했다. 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다.
김치, 달걀프라이에 멀건 국 한 그릇. 불 끄러 다니는 소방관들을 위해 한 소방서가 마련한 아침상이다. "미안해요, 허기(虛飢)나 면하세요"라는 쪽지까지 있으면 명실상부(名實相符)했을 거다. 변변찮은 반찬을 낼 수밖에 없는 조리사나, 부실한 밥상을 받는 소방관이나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게 선진 대한민국의 소방서 급식이라니, 민망하다. '가난한 날의 행복'이 출간된 1978년,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은 493만원. 지금은 3천705만원(2023년)이다.
소방관들의 부실 급식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話題)가 됐다. 교도소 급식보다 못 하다는 수모도 겪었다. 한 끼 급식 단가가 3천원대인 소방서도 있다니, 말문이 막힌다. 네티즌들은 "저런 부실한 밥을 먹고 화재 진압하러 가는 거냐"는 반응을 보였다. 소방관 부실 급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소방서 중 급식 단가(전국 241개 소방서 중 지역별 1곳 표본조사)가 가장 낮은 곳은 대구 A소방서(3천112원)다. 경남 B소방서, 전북 C소방서도 3천원대였다. 편의점 도시락 값보다 싸고, 서울시 공립고교의 무상(無償)급식 단가(5천398원)·서울시 결식우려아동 급식 단가(9천원)보다 낮다. 소방서별로 최대 2.2배 차이가 나는 점도 문제다. 시·도별 소방관 급식 예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2020년 국가직(國家職)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재정의 85%를 지자체가 떠안고 있다. 소방관 처우가 열악(劣惡)한 이유다. 지자체의 재정 형편에 따라 급식비 등 관련 예산이 천차만별이다. 특수업무수당은 수년째 그대로다. 위험근무수당은 8년째 월 6만원이며, 화재진화수당도 24년째 월 8만원이다. 정치권은 지난 1월 말 경북 문경 화재 참사로 숨진 소방관을 추모하며, 소방관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소방관이 초라하면, 국민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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