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그렇게 행복은 한 뼘 더 가까이

'대체로 기분이 좋습니다'
가타기리 하이리 지음 / 위고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사치에와 처음 만나는 서점 장면에서 '갓차맨' 가사를 거침없이 적어주는 사람. 세계지도를 펴놓은 후 눈감고 손가락으로 선택한 핀란드에 온 일본인 여행객. 영화 '카모메 식당'의 미도리를 기억하시는지. 미도리를 연기하는 일본배우 가타기리 하이리가 펴낸 '대체로 기분이 좋습니다'는 읽는 내내 시종일관 좋은 기분이 유지되는 특별한 에세이다.

책은 1993년 가을 동생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팩스 하나 들고 과테말라로 떠나 열흘간 머무는 동안의 짧은 단상을 시작으로, 13년 뒤 다시 동생을 만나러 간 여행의 기록이다. 과테말라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채운 책은, 범상치 않은(저자 스스로 말하듯이 예쁘지 않은 사각형 얼굴에 큰 체격) 외모를 가진 영화배우의 에세이라기엔 확고하게 주관적이면서 자기연민 한 톨 찾아보기 힘들 만큼 객관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카모메 식당'의 미도리와 저자 가타기리 캐릭터가 똑같다는 점이다. 예컨대 영화에서 미도리는 "한 번 정하면 도리가 없다"고 여기는 스타일로 주저 없이 핀란드로 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가타기리 역시 어머니의 변심으로 이란 여행이 취소되자 예기치 않게 과테말라로 가게 되는데 이란 여행의 좌절은 온 데 간 데 없고 "열흘 전만 해도 상상도 안했던 과테말라행이지만 막상 길을 떠나니 가슴이 설레었다."(26쪽)고 적고 있다.

이미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가 퇴짜 맞았지만, 시장에서 많은 닭 껍질을 보고는 "이곳에는 파가 있고 신맛이 아주 강렬한 레몬도 있다. 이걸로 폰스소스를 곁들인 닭 껍질 요리를 만들 수 있다!"(125쪽)며 재료비 공짜인 아이디어를 냈다가 또 다시 동생에게 거절당하는 대목은 영락없는 '카모메 식당'의 미도리다. 미도리는 식당에 손님 없는 것이 안타까워 지역신문에 광고를 제안하고, 현지 재료로 오니기리를 만들어보자며 청어와 순록고기를 사오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여배우가 쓴 여행기이자 가족에 대한 복잡다단한 감정의 편린을 모은 에세이인데도 사적 감상을 배제한 채 사실 기록에 집중한 저자의 균형은 무척 놀랍다. 이 책이 안티과 지방의 가이드북으로도 손색없는 까닭이다.

과테말라 하면 커피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책에도 커피와 관련한 재밌는 일화가 나온다. 즉 저자가 과테말라 커피 중 최상품인 안티구아의 생산지 안티과에 보름 동안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커피 맛을 못 봤다고 푸념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때 설탕만 잔뜩 넣은 싸구려 커피에 경악하는 가타기리에게 올케 페트라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인생이 너무 씁쓸하니까 최소한 커피만큼은 달게 하는 거예요." 좋은 품종의 커피콩은 수출하느라 정작 현지인은 맛없는 커피를 마신다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나도 안티구아 원두를 관성적으로 갈아 마시곤 했는데, 좀 더 애정을 가져야겠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어느 도시, 어떤 삶이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 친밀한 탐방기. '대체로 기분이 좋습니다'의 미덕이 여기 있다. 이국땅에 정착한 동생을 바라보는 누나의 시선으로, 식민지와 정치 역경을 거치면서도 마야인의 자긍심을 지켜온 과테말라인의 삶의 모습으로, 한 여배우의 열린 마음으로. 그렇게 행복은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왔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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