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25전쟁 발발 3일 만에 남한은 북한에 수도를 빼앗기고 순식간에 낙동강 남쪽으로 내몰렸다. 사즉생으로 38선 이남을 회복한 건 9월 말이었다.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16개국 청년들의 숭고한 희생이 만든 전과였다. 이제 문제는 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느냐였다. 서울 환도식에서 미8군 워커 사령관은 "진격은 38선까지"라고 못 박았다. 38선 돌파를 새로운 전쟁 개시로 해석하는 국제법상의 현상 유지책이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에 친필 '북진명령서'를 하달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이기 때문이었다(제헌헌법 제4조). 북한의 전면전 개시에 장면 주미대사는 진즉에 승전을 통한 국토 통일을 선언했다. "38선은 의미를 상실했으며 전 한국의 해방과 통일은 필수적이다." 마침내 국군은 38선을 넘어 국토 완정의 기세로 압록강에 도달했다. 국제법과 헌법의 논리가 충돌한 순간 국가의 운명은 이렇게 개척되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두 국가론'이 남남 갈등을 폭발시키고 있다. 그의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사 요지는 이렇다. "남북한이 두 개의 국가란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국가보안법도 폐지하고 통일부도 정리하자.…통일을 유보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합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우리가 추구해 온 국가연합 방안도 접어 두자고 제안한다.…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하고 30년 후에나 잘 있는지 열어 보자."
학계에서도 제기되기 어려운 가공할 상상력을 국가 지도자급 인사가 쏟아냈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다. 그의 주장과 무관하게 국제법상으로 남북한은 이미 두 개의 국가다. 1991년 남북한은 분단 고착화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UN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두 개의 국가를 공인받았다. 이후 한미일-북중러의 세력 균형(power balance)을 축으로 한 체제 경쟁의 결과, 남북한의 격차는 하늘과 땅으로 벌어져 있다.
그럼에도 두 국가론은 국론을 위협하는 허구적 발상이다. 우선 그것은 반헌법적이다. 두 국가가 완전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영토의 절반을 떼어 내는 헌법(제3조) 개정이 필수적이다. 이는 휴전선 너머 국토의 상실은 물론 비상사태에 개입할 권한과 의무의 포기를 뜻한다. 만에 하나 북한 체제의 급변 시 남한은 속수무책으로 상황을 방조해야 한다.
그리고 두 국가론은 남북 관계를 국가 간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잠정적 특수 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정한다.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은 6공화국의 모든 정부가 계승해 왔다. 국가 안보 컨트롤타워인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 출신인 그가 이를 몰각하는 행태는 기행에 가깝다.
또한 그것은 반문명적이다. 두 국가론은 북한의 세습 독재(hereditary dictatorship)를 용인하는 우를 범한다. 세습 독재를 선출된 독재(elected dictatorship)로, 나아가 민주주의 체제로 변형하려는 노력 없이 한반도 평화는 요원하다. 현 체제 하에서 국가보안법과 통일부 해체는 오히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무력화하고 분단을 항구적으로 고착시킬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두 국가론은 북한 주민을 제도적으로 분리시켜 그들에게 배신의 신호로 읽힐 것이다. 그리고 북한 인권 문제 제기와 탈북민 수용은 내정 간섭 논란과 북측 강경파의 도발을 촉발할 것이 자명하다.
두 국가론이 더욱 놀라운 건 그의 이력 때문이다. 1989년 전대협 의장 임종석은 "조국 통일의 단심으로" 임수경을 방북시켰다. 임수경은 38선을 넘어 귀환하기까지 45일간 북한 전역을 돌며 "조국은 하나다"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전국의 대학가는 2공화국에서 등장한 남북 학생회담 슬로건을 다시 호출했다. "이 땅이 뉘 땅인데 오도 가도 못하느냐,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소위 분단 세력에 맞서 처절히 항거했던 그가 신(新)분단 세력으로 환골탈태한 아이러니 앞에서 할 말을 잊는다. 우리는 영토를 포기하고 인권을 외면하며 세습 독재를 용인하는 국가에 절망한다. 그래서 그에게 묻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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