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대의 창] 상생으로!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지난달 하순에 계명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영웅'(윤홍선 제작)을 관람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자서전을 완성하고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는 도중에 형(刑) 집행을 당했다. 안 의사를 존경하는 일본인 간수가 동양 평화가 가능은 하냐고 물었다. 안 의사는 조선과 일본과 중국이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했다.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하는 위업을 이룬 위인은 죽음 앞에서도 거시적 상생(相生)을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과 자연, 국가, 종교, 여야(與野), 여여(與與), 야야(野野), 심지어 개인 간에도 상생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실천이 어렵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는 분쟁이, 국내에서는 의정(醫政), 여야, 여여 갈등이 끊이질 않아서 국민은 마음이 아프다.

개인이 상생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개인과 주변이 어렵겠지만 지도자들이 상생을 추구하지 않으면 나라가 아프다. 개인과 집단의 인식이 변해야 상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식 변화를 위한 다섯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본다.

첫째,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단계별로 하는 것이 아니다. 즉 수신을 끝내고 제가 또는 그 이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네 가지 모두 어렵고 끝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개인이 처한 형편에 따라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을 위해 평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시민들은 수신과 제가를 잘하면 된다. 그런데 치국이나 평천하의 기회를 가진 지도자들은 수신과 제가는 물론이고 치국이나 평천하까지 하는 덕(德)을 쌓아야 한다. 수신과 제가, 치국과 평천하 과정에서 관용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면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것 또한 덕이다.

둘째,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올의 '노자와 21세기'(1999년)에 따르면 선과 악이라는 말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서양의 관점에서 생겨났다. 나를 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면 그것으로 끝이며 개전(改悛)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선의 반대를 악이 아닌 '불선'(不善)으로 보았다. 어떤 것이 불선, 즉 '선하지 못하다는 것'은 선하게 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불선하게 보일지라도 대화의 문은 열어 놓아야 한다. 음지가 양지가 되듯 불선이 선으로 변하거나 판명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악의 화신이 아닌 불선한 상대도 이 세상에 존재할 나름의 이유가 있고 존재 이유가 있다면 존중해야 한다. 인권과 인간 존엄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존중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내가 상대를 존중해야 상대도 나를 존중한다. 애완동물로 악어나 뱀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중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넷째, 상대의 협력을 얻어내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예술, 연구, 스포츠 같은 분야에서는 홀로 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적인 일을 수행할 때는 독단(獨斷)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의 반대 의견을 수렴하여 정반합(正反合)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며 상호 협의로 도출한 해법은 지속가능성도 대체로 높아진다. 상대를 존중하고 애를 써서 협력을 끌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으로, 사익(私益)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공공선(公共善)을 추구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가족, 자기 집단의 이익을 좇는 것은 들판의 하이에나 떼도 한다. 하이에나보다 나은 인간이라면 공공선에 반(反)하는 이익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불의(不義)한 이익을 포기하려면 절제와 용기가 필요한데 이러한 것들을 기르는 일은 앞서 이미 언급한 수신(修身)의 일부이다.

의정, 여야, 여여 갈등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아프다. 관련 지도자들은 수신과 제가와 치국을 잘 살피고, 상대가 불선하게 보일지라도 존중해야 한다. 누구의 주장이 더 공공선에 부합한가를 놓고 토론하는 일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상호 협력을 이끌어내고 지속가능한 정반합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다음 주 토요일(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처형한지 115주년 되는 날이다. 안 의사의 고귀한 상생 정신을 본받아 우리도 의정, 여야, 특히 여여 간의 꽉 막힌 물꼬를 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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