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가에서 상상력에 기반한 아이디어쯤으로 거론돼 왔던 10월 헌법재판소 마비설이 현실이 됐다. 조만간 임기가 종료되는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의 추천권을 놓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이어가며 대치하고 있어 헌재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보수 정가에서는 국회 관례에서 벗어나 3명 중 2명의 추천권을 가져가겠다는 거대 야당을 향해 '국회 권력이 사법 최후의 보루인 헌재 마비를 노리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10일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 따르면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사건 심리가 가능하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 3명이 퇴임하는 17일 이후로는 현직 재판관이 6명에 불과해 아무런 심리를 할 수 없다.
이번에 공석이 되는 세 자리는 국회가 선출할 몫이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자 몇 명을 추천할지를 두고 다투면서 아직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았다. 야당은 170석(민주당) 대 108석(국민의힘)이라는 의석수에 비례해 3명 중 2명을 야당이 추천하는 게 맞다고 보고 있다.
반면 여당은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1명은 여야 합의로 추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선출 절차를 거치는데 최소 한 달은 필요하기 때문에 다음 달까지 헌재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운 상황에 닥칠 것은 기정사실이다.
헌재가 마비되면 당장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 심판을 비롯해 거야(巨野)가 일방 처리한 검사 탄핵안 등 각종 탄핵 심판 변론과 선고가 줄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향후 거야가 추가로 탄핵안을 남발할 경우 소추된 공직자는 직무 정지 상태가 되는데 헌재가 제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상 공직자 해임권을 민주당이 갖게 된다는 의미다.
더욱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해 실제 소추가 이뤄진다면 곧바로 헌정 마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헌재가 처한 앞날을 우려하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지난 8일 헌재에서 열린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심판 2회 변론준비기일에서 국회가 선출권을 행사하지 않아 정식 변론을 열 수 없게 된 상황을 꼬집으며 국회 입장을 따져 물었다.
문 재판관은 "국회는 탄핵 소추를 했고 헌법에 따라 탄핵 심판이 열렸는데 국회가 재판관을 선출하지 않았고 국회가 만든 법률에 따르면 변론을 열 수 없다"며 모순된 현실을 지적했다.
보수정가 한 관계자는 "거대 야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삼권분립의 원칙마저 훼손하며 입법독재를 벌이고 있다"며 "헌재 마비가 현실화·장기화한다면 향후 냉엄한 국민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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