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희망의 색으로 그려낸 기억 속의 ‘산’

박두봉 개인전 '기억(Memory)…'
10월 20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

박두봉, Memory(기억), 장지에 수간채색, 193.9x260.6cm.
박두봉, Memory(기억), 장지에 수간채색, 193.9x260.6cm.
박두봉 작가. 대백프라자갤러리 제공
박두봉 작가. 대백프라자갤러리 제공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삼십리는 걸어가야 겨우 버스가 다니는 도로가 나오는 산골짜기에서 그는 나고 자랐다. 집을 나서면 보이는 것은 푸른 산과 나무뿐이었고, 그곳이 곧 그의 놀이터였다. 산 너머 산, 그 끝에 어렴풋이 보이는 가장 큰 산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그에게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품었던, 수많은 추억들이 쌓이고 쌓였던 동네였다.

그래서인지 20대 초반, 무남독녀인 자신을 애지중지 키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도 그의 발걸음은 고향을 향했고, 자신을 품어주는 고향의 산등성이로부터 흠뻑 위로를 받았다. 산은 곧 엄마였다.

전통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박두봉 작가가 19번째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 '블루 마운틴'은 이처럼 자신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 '산'을 소재로 한다. 밝고 화려한 기존의 화조도 작품과는 다른 느낌의, 차분하면서도 웅장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산 위에 콕콕 박힌 별과 달은 그가 어린 시절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보던 밤하늘을 그대로 옮겼다.

신작이지만 2020년부터 4년 간 연구해온 애정 어린 작품. 그는 '블루 마운틴'을 구상하게 된 계기에 대해 미국 현대미술 거장 엘즈워스 켈리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과거로부터 양분을 얻고 현재에 질문을 던지며 미래로 나아간다'고 하더군요. 양분은 충분하니,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일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편으로 좀 더 절제하고 비워내는 것의 힘도 실현해보고 싶었죠."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두봉 작가의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두봉 작가의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두봉 작가의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두봉 작가의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수십년 간 민화를 연구해왔지만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이었고, 그는 결국 수많은 실험과 도전 끝에 자신만의 기법을 만들었다.

분채와 석채, 호분을 아교와 물로 희석한 것을 며칠 간 두면 가루가 가라앉고 맑은 물만 남는다. 그것을 안동 한지를 삼합, 오합으로 배접한 장지 위에 6~7번을 칠하는데, 일주일 가량을 기다리면 마침내 모락모락 무언가가 피어나는 듯한 색이 슬며시 올라온다. 작가는 이를 '종이가 물을 머금었다가 색을 뱉어낸다'고 표현했다.

그는 "온도와 습도가 알맞아야 나오는, 예민하고 힘든 작업이다. 장마철에는 종이가 이미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 물을 올려도 흡수가 잘 안되고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는다"며 "작품 속 색깔들이 처음 물에 개면 시커먼 색이어서, 그야말로 실험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요즘 그가 하는 것처럼 분채와 석채를 일일이 개고, 종이를 직접 배접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 튜브로 된 물감이 있고, 배접된 장지를 팔기 때문. 하지만 그는 지문이 닳도록 물감을 개고, 가루가 가라앉길 기다리며, 장지가 먹은 색을 뱉어낼 때까지 수 일을 기다린다. 빠르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시대와 정반대의 방향인 셈.

"훨씬 수고스럽지만 그만큼 누구나 할 수 없다는 자부심이 더해지죠. 이 독특한 색의 일렁임을 나타나게 하는 저만의 기법에 어떤 이름을 붙일 지 고민 중입니다."

왜 푸른 색의 산일까. 그는 기존 작품에도 푸른 색을 많이 썼듯이, 자신에게 희망적인 에너지를 주는 색이기에 좋아한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치유와 위로의 상징인 산에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더했다는 것.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는 그의 작품을 두고 "청색은 감각적인 예술가들의 내면세계를 나타내는 데 적합한 색채로, 표현의 무한성과 언어적 상징성을 함께 담고 있다"며 "청색은 언제나 꿈과 소망을 이루어주는 긍정적 색채로 인식돼 온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 속 청색 역시 자연을 노래하는 음악이 되고, 시가 되며, 힐링과 감동을 전해주는 함축적 요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전통 민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현대 민화의 변화를 모색해오고 있는 작가는 앞으로도 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얘기했다. 그는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조선시대의 민화 본을 갖고 계속 재현하기보다, 거기서 더 발전시켜서 21세기의 민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후학들을 위해 불도저 같은 역할을 하려 한다. 150호 10점 연작 등 대작들도 시도해보며 산을 펼쳐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개인전 '기억(Memory); 희망의 메시지 블루'는 오는 20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이어진다. 053-420-8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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