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팔조에서 이경미 작가의 대구 첫 개인전 '지난 밤과 노이랏의 배(Last night and Neurath's boat)'가 열리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지난 작업세계를 총망라하는 주요 시리즈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는 '고양이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작품마다 고양이가 등장하기 때문. 그의 초기작은 개인적으로 암울했던 시기를 함께 한 반려묘 '나나'를 다양한 통에 그린 '보틀(Bottle)' 시리즈였다.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됐던 나나를 와인병과 잼병, 바니시통의 바깥에 입체적으로 그려, 마치 통의 내부에 저장해놓은 듯한 작품이었다. 이 시리즈는 2011년 개인전 당시 160여 개의 통을 선반에 놓은 대형 설치작업으로 발전했다.
작가는 "고양이는 곧 나를 대변하는 존재와 다름 없었다"며 "나나가 항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듯한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저부조(低浮彫) 회화다. 윈도(Window) 시리즈는 캔버스에 문을 설치한 듯한 프레임을 통해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2개의 문 너머 풍경과 문 사이의 원경, 바로 눈앞에 앉아있는 듯한 고양이 등 4개의 이질적인 공간이 한 화면 안에 나열되며 익숙하지만 비현실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스트릿(Street) 시리즈 역시 좌우의 책 기둥 사이로 표현된 입체적인 풍경이 관람객들에게 착시를 일으킨다. 눈에 보여지는 그림자가 실제의 그림자인지 그림으로 구현한 그림자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저는 여전히 이 세계를 파악하려고 할 때 심한 멀미를 느낍니다. 즉 이 작품들은 '나의 세계는 이러했는데 당신의 세계는 어떤 모양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죠."
그러던 그가 '벌룬(Ballon)' 시리즈를 그리게 된 것은 결혼 후 미국으로 이주해 생활하던 중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발했던 즈음 문득 바람 빠진 호일 풍선을 발견했고, 그것은 항상 떠돌아다녔지만 속이 텅 빈듯한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주름지고 초라해진 모습의 풍선을 있는 그대로 캔버스에 그려넣으며, 관람객들이 한 때 아름답게 빛났을 풍선의 색과 문구를 다시 생각하게끔 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뉴 버티컬 페인팅' 시리즈다. 이 작품들은 알베르히트 뒤러가 1498년 제작한 '요한의 묵시록' 목판화 연작 15점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작가는 2016년 독일 헤센 주립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마주한 이후 직접 모사하기 시작했다. 높이 157cm, 폭 120cm에 달하는 캔버스에 세필로, 한 점 당 꼬박 한 달 반에서 두 달 가량 옮겨 그려 경이로울 정도의 섬세한 결과물이 탄생했다. 작가는 그 위에 만화 캐릭터나 타이포그래피, 깊이감과 속도감을 더하는 선, 광고 속 이미지 등을 더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을 중첩했다.
이 시리즈를 두고 김석모 미술사학자는 "그는 뒤러 원작에 대한 재해석이나 의미론적 접근과는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며 "그는 뒤러의 판화가 중세와 르네상스가 교차되던 혼돈의 시기에 정보전달은 물론 대중적 의식을 자극하는 매스미디어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일상의 대상들을 콜라주 형식으로 덧입힌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작가는 뒤러의 목판화 작업을 화회 작업으로 번안하면서 과거의 매체에 현재성을 불어넣었다. 시간의 축을 종과 횡으로 나누고 개별적 정보들을 하나의 화면에 종합하고 있는 뉴 버티컬 페인팅 시리즈는 메타적 매체 비평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작가는 홍익대 판화과와 회화과,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제24회 석주미술상을 수상했다. 대전시립미술관과 세종문화회관 등 국내는 물론 중국 상하이 리앙 프로젝트 코 스페이스, 베이징 스프링 센터 오브 아트, 대만 아트에이지, MOCA 타이페이 등 해외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경기문화재단,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있다.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053-781-6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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