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뗀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느껴본 사람은 안다. 목요일 저녁이면 수필을 배우기 위해 삼삼오오 배움터로 모여든다. 하는 일도 직책도 다양하다. 퇴임 이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서라든가 어릴 적 꿈을 이루고 싶은 바람, 지인의 권유 등 저마다 이유를 품고 같은 시간 같은 곳으로 향한다. 오롯이 글을 쓰기 위해 한마음으로 모인다.
잘할 수 있을까? 계속할 수 있을까? 그만두는 게 옳을까? 등 삶이 그러하듯 시작과 함께 갈등하며 주저앉을 핑계부터 찾기도 한다. 그야말로 한 걸음이 참 어렵다. 조금만 나아가면 될 터인데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용기를 내어도 나이만큼 쌓인 경험이 자꾸만 첫걸음을 서툴고 불안함으로 뒤덮고 만다. 어쩌면 걸음을 뗀다는 건 도전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고난의 극복을 상징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내가 수필을 시작하던 당시를 떠올려도 시작의 걸음이 낯설고 무거웠다. 배움의 목적 이외에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러 자꾸만 머뭇거렸다. 한 과정이 마무리되어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으로 맴도는 기분이었다. 홀로 걷고 또 걸으며 장막을 걷어 빠져나갈 궁리에 여념이 없었다. 수필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나만의 길을 걷기 위해 방향을 살폈다. 어쩌다 작은 성취라도 이루게 되면 겨우 걸음을 뗄 수 있었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떠올리면 경이로울 때가 있다. 지난 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심장 박동소리가 요동칠 만큼 주체할 수 없이 나를 설레게 했다. 여리고 섬세하게 때론 아프게 삶을 보듬으며 걸어가는 그녀의 행보는 과히 놀랍다. 자랑스럽다. 작가가 이뤄가는 문학의 길은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지난 시간을 면면히 들여다보고 싶은 간절함이 솟구친다. 그녀의 위대한 걸음 앞에서 지금껏 수많은 문인이 쏟아낸 언어의 길을 다시금 엿보게 된다.
몇 해 전 한강 작가의 인터뷰를 들은 바 있다. 글을 쓰는 창작의 고통을 논하는 질문을 내밀자 그녀는 글을 쓰는 거보다 존재하는 게 고통이라며 자기 생각을 조용히 읊었다. 창작의 고초는 삶의 괴로움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뜻의 답변을 내놨다. 삶을 대하는 작가의 마음과 아픔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보듬으려는 속내가 느껴졌다. 인터뷰 말미에 "살면서 글도 변할 거라 믿고 영혼이 깃든 글을 쓰고 싶다"고 읊조리던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살아간다. 누군가는 견디고 있고 몇몇은 치열하게 헤쳐 나가고 있다. 한 걸음을 떼면 앞을 가렸던 가림막이 조금씩 보인다. 어떻게 걷어내야 할지 궁리하며 한 걸음씩 발을 내딛다 보면 자기만의 길이 보이리라. 분명 누군가의 위대한 걸음은 뒤따르는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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