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석이가 빠지면 랩이 아니지"
16일 오후 2시 10분쯤 대구 달서구 남대구전문장례식장 201호. 경북 칠곡의 할머니 8명이 모여 결성한 힙합 그룹 '수니와칠공주' 멤버 서무석 할머니 빈소에는 곡소리 대신 흥겨운 힙합 노래와 함께 추모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통이 큰 배기 바지에 함께 맞춘 검은색 맨투맨 티셔츠, 버킷햇·스냅백 등으로 무장한 할머니 7명은 노랫소리에 맞춰 양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고인을 추모하는 랩 공연을 선보였다. 이들은 빈소에서 고인을 그리워하는 곡 '무석이 빠지면 랩이 아니지'에 이어 고인이 생전 마지막까지 연습을 함께했던 신곡 '나는 나이가 많은 학생이다'까지 연이어 부르며 추모 공연을 선보였다.
별세한 서 할머니를 제외한 '수니와칠공주' 멤버 7명은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공연을 이어갔다. 할머니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양손은 위아래로 흔들며 춤을 추다가도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허리를 돌려가며 다채로운 안무를 펼치기도 했다. 준비한 두 곡의 무대가 끝나자 빈소에는 박수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무대를 마친 할머니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힙합' 복장을 한 영정사진 속 서 할머니를 향해 "우짜든동(어찌됐든) 좋은데 가이소", "먼저 가서 좋다고 편하게 웃고있네", "우리들도 이따 갑니데이"라고 말하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서 할머니의 장녀 전경숙(65) 씨는 할머니들을 껴안으며 "엄마 몫까지 열심히 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라며 화답했다.
생전 서 할머니와 가장 친했던 '수니와칠공주' 이필선(88) 할머니는 준비해온 추모 편지를 더듬더듬 읽어나갔다. 그는 "무석아 우리가 여기저기 다닐 때 늘 붙어 다녀서 동네 사람들이 '신랑각시'같다고 했는데, 지금은 왜 저기 누워있느냐"며 "아프단 말도 안하고 혼자 그렇게 가버리니 좋으냐. 하늘나라에 가서 아프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랩 많이 부르고 있어라. 벌써 보고 싶다"고 했다.
'수니와칠공주'에게 한글과 랩을 가르쳤던 정우정(54) 씨는 "평소 조용하던 서 할머니께서 지난 4일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먼저 노래를 한 곡 부르고 싶다며 처음으로 노래를 한 적이 있다.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할머니께서 시한부 3개월 판정을 받았지만 9개월을 더 사실 정도로 랩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 마음을 담아 이날 공연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서 할머니의 유족 장녀 전 씨는 "평생 조용하게만 지냈던 엄마가 여든 넘어 글을 배우고 랩을 하기 시작하면서 끼를 맘껏 뽐낸다는 걸 느꼈다. 스스로도 행복해 하셨다"며 "엄마도 오늘 이 공연을 보고 엄청 좋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날 칠곡군에 따르면 할매래퍼그룹 '수니와칠공주' 서무석 할머니가 림프종 혈액암 3기를 앓다 끝내 숨졌다. 향년 8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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