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노벨상과 한국인의 독서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2007년 출간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2016년 '맨부커 국제상' 수상 전까지 국내에서 약 3만 부가 팔렸다. 그러나 '맨부커 국제상' 수상 직후 3일 만에 32만 부가 팔렸다. 10일 오후 8시 노벨문학상 발표가 나자 한강 작가의 책은 하루 만에 약 30만 부가 판매됐고, 14일 80만 부, 16일 오전 9시 기준 103만 부(누적) 이상 팔렸다.

경기도교육청이 청소년 성교육에 유해(有害)하다며 학교 도서관에 폐기 논의를 권고한 도서 중에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포함된 바 있다. 온라인에서는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대표작을 폐기한 도서관이라니! 이러니 우리나라 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이다"는 등 비판이 올라왔다. 국민신문고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청소년들의 권장 도서로 지정하여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내용의 민원도 제기됐다.

술·담배 판매에 연령 제한이 있듯이 문화 창작물에는 연령 등급이 있다. 그것은 술·담배를 만들거나 판매하는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도, 작가들의 창작을 억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한강의 소설집 '채식주의자'에는 뺨을 때려 가며 강제로 고기 먹이기, 칼로 자해, 형부가 처제 온몸에 꽃 그림 그리기, 형부와 처제의 성관계, 식음을 전폐(全閉)하고 말라 죽어 가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작가는 이런 장면(각종 사회 규범 위반)을 통해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인 문학의 영역이다. 청소년들에게 권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기쁘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이 우리 사회의 금기, 보호 제도를 무시해도 좋을 면허는 아니다. '19금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았다고 청소년 관람가(觀覽可) 영화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노벨상을 받았으니 우리나라 교육기관의 '심의(審議)'를 무시하자는 생각, 베스트셀러 1위가 100만 권 팔릴 때 그보다 못할 게 없는 2위는 10만 권도 안 팔리는 현상, 도무지 재미없는 책을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앞다투어 구매하는 문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강의 노벨상 수상으로 다른 작가들의 책도 더 팔릴까, 오히려 먼지만 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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